2023. 3. 26. 11:51ㆍ영화 파노라마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의 영화 '미스틱 리버'(2003년 국내 개봉)의 결말은 때로 운명이 얼마나 혹독한가를 지적한다. 어릴 적 우정이 끔찍한 사건으로 인해 어긋나버린 세 남자가 25년 후에 다시 비극적인 사건에 얽히면서 겪게 되는 이야기이다. 그 사건의 결말은 관객들의 일반적인 기대와 엇나간다. 많은 영화들이 꼬인 매듭을 마지막에는 정리해놓으며 '정의의 구현'으로 귀결짓지만, '미스틱 리버'는 그렇지 않다. 소설가 데니스 루헤인의 훌륭한 원작을 바탕으로 만든 '미스틱 리버'는 삶과 운명의 비극에 대해 되짚어보게 하는 영화이다. 넷플릭스의 '지금 뜨는 콘텐츠'에서 볼 수 있다.
미국 보스턴의 서민 동네에서 자라는 10대 초반의 소년 지미 마컴과 숀 디바인, 데이브 보일은 거리의 굳지 않은 시멘트에 이름을 새기다 사복 형사에게 걸린다. 이 사복 형사와 동료는 셋 중 데이브를 차에 태워가는데 사실, 이들은 경찰을 사칭한 아동 성폭행범들이었고 데이브는 나흘 동안 갇혀 있다가 빠져 나온다. 이 사건으로 인해 서로를 향한 원망과 죄의식이 세 친구들 사이를 갈라놓고 멀어지게 한다. 성인이 된 셋 중 거친 성격의 지미(숀 펜)는 과거 범죄를 저질렀지만, 식료품점을 운영하며 성실하게 살고 있고 숀(케빈 베이컨)은 형사가 되었다. 데이브(팀 로빈스)는 하는 일 없이 무력감을 느끼며 살아간다.
어느 날 19세였던 지미의 딸이 총에 맞아 살해된 채 발견되고 지미는 괴로워하며 범인을 직접 처단하겠다고 결심한다. 숀은 지미의 딸 살해사건을 맡아 피해자 주변을 조사한다. 한편, 데이브는 아내 셀레스트(마샤 게이 허든)에 남모를 비밀을 털어놓는다. 지미의 딸이 살해되던 날 밤에 술집에서 그녀를 보았던 데이브는 집으로 돌아오면서 정체 모를 남자를 심하게 두드려팼다고 이야기한다. 밤늦게 집에 돌아온 데이브가 자신의 손이 피투성이가 된 것을 보고 놀라는 셀레스트에게 그가 자신에게 칼을 들고 돈을 빼앗으려 해 화가 나 마구 폭행했는데 죽었을지도 모른다고 이야기한다. 셀레스트는 데이브를 안으며 정당방위니까 괜찮다고 말한다.
데이브와 셀레스트는 이후 매일 신문을 살피지만 남자의 시체를 발견했다는 기사는 보이지 않는다. 셀레스트는 자신의 사촌 언니이자 지미의 아내인 아나베스(로라 리니)를 찾아가 그녀와 지미를 위로한다. 숀은 지미의 딸 행적을 조사하다 그녀와 같은 술집에 있던 데이브를 찾아가 일반적인 질문을 한다. 하지만, 숀의 동료 휘트니 파워스(로렌스 피시번) 형사는 데이브가 손이 다친 것을 보고 그를 미심쩍어 한다. 죽은 딸의 남자 친구였던 브렌든도 의심을 받지만, 그가 여자 친구를 진정으로 사랑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수사 대상에서 벗어난다. 하지만, 지미가 과거에 브렌든의 아버지 레이를 많이 싫어해서 브렌든 마저 꺼려 했다는 점도 드러난다.
지미는 경찰을 믿지 않고 자신의 친구들과 함께 조사를 벌이고 옛 친구 데이브를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도 나눈다. 데이브를 위로하던 셀레스트는 데이브가 이후에 말이 오락가락하자 혹시 데이브가 지미의 딸을 죽인 것이 아닌가 의심한다. 한편, 브렌든은 말 못하는 장애인인 동생이 친구와 함께 여자친구를 살해한 것이 아니냐며 의심하고 그들을 폭행한다. 살해에 쓰인 총기와 총알이 자신이 숨겨 놓았던 아버지 레이의 총기와 총알과 같았기 때문이다. 이 순간 숀 형사가 들이닥쳐 이들을 뜯어말리고 같은 시각에 지미는 데이브가 딸 살해범인지를 알아내기 위해 그를 어디론가 데리고 간다.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은 이야기를 잘 짜는 고전적 기법으로 영화를 탁월하게 만들어내는 감독이다. 다른 작품들처럼 '미스틱 리버'도 어린 시절의 잊고 싶었던 기억과 성인이 된 후 벌어지는 사건, 사람들의 다양한 모습을 효과적으로 구성해 이야기를 전개한다. 그래서 이야기의 재미와 극적 긴장감을 잘 유지하면서 점차 비극적으로 흐르는 분위기를 솜씨있게 표현해 낸다. 원작 소설가 데니스 루헤인은 자신의 작품들이 영화화되면서 훼손되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었는데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미스틱 리버'를 영화화하겠다고 하자 아주 좋아했다고 한다.
지미 역을 맡은 숀 펜은 뜨거운 부성애에 울부짖으며 힘들어하다 차분하게 딸의 살인범을 추적하는 연기를 훌륭하게 표현했다. 어릴 적 아동성폭행 범죄의 트라우마로 무력감에 빠지고 불안하게 지내는 데이브 역의 팀 로빈스의 연기도 돋보인다. 이들은 '미스틱 리버'에서의 연기로 아카데미상 남우 주연상과 조연상을 받았다. 이들 외에 케빈 베이컨과 로렌스 피시번, 지미의 강인한 아내 역할을 맡은 로라 리니와 데이브의 아내 셀레스트 역을 연기한 마샤 게이 허든도 인상적인 연기를 선보인다. 영화의 결말은 개운치 않으며 웬지 불완전하게 다가온다. 그러나 조금 더 살펴보면 영화 속 세 친구가 하나같이 비극적인 운명의 덫에 걸리고 말았으며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은 그것이 현실의 삶에서 종종 일어나는 일이라고 강조하는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