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로테스크한 스토킹, 넷플릭스 '마담 싸이코'(ft. 이자벨 위페르, 클로이 모레츠, 닐 조던 감독)

2023. 3. 31. 00:00영화 파노라마

 

영화 '마담 싸이코'에서 프랜시스(클로이 모레츠)는 친구 에리카의 집에서 함께 지내며 미래를 계획한다.

사람에게 매달리고 스토킹하는 것은 소름 돋는 일이다. 피해자는 정신과 삶이 무너지고 가해자도 제 정신이 아니라는 점에서 비극적이다. 실생활에서 주위의 스토킹 사건을 알게 될 때에도 마냥 남의 일로만 여길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다만, 스토킹을 소재로 한 영화를 보게 될 때 관객은 그것이 실제적 삶은 아니기 때문에 스릴러 영화로서 흥미롭게 지켜볼 수 있다. 그러나 영화 속 사건이라 해도 언제든지 현실에서도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편하게만 볼 수도 없다.

스토킹을 소재로 한 뛰어난 영화들을 떠올릴 수 있다. 빼어난 배우이자 감독인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스토킹을 소재로 한 '어둠 속에 벨이 울릴 때'(1972년 국내 개봉)를 내놓으며 감독으로 첫 선을 보였다. 낭만적이면서도 무서운 제목의 이 영화에서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캘리포니아 지역의 인기 DJ로 여성 팬의 끈질긴 스토킹에 고통을 겪는다. 로브 라이너 감독의 '미저리'(1990년 개봉)는 인기 작가 폴 쉘던(제임스 칸)이 그의 여성 팬 애니 윌크스(캐시 베이츠)에게서 탈출하려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또 넷플릭스의 시리즈물 '너의 모든 것'도 스토킹을 소재로 한 드라마이다.

프랜시스는 어느 날 지하철에서 누군가 두고 간 가방을 챙겨 주인을 찾아가는데 그레타(이자벨 위페르)가 반갑게 맞이해준다.

닐 조던 감독의 '마담 싸이코'(2019년 국내 개봉)는 두 여성 간에 얽힌 스토킹을 다룬다. 중년의 여성 그레타 히덱(이자벨 위페르)이 젊은 여성 프랜시스 맥컬린(클로이 모레츠)에게 매달리는 것이 이야기의 핵심이다. 이 영화에서 그레타는 마음 속에 어둡고 깊은 심연이 도사리고 있는 인물로 '어둠 속의 벨이 울릴 때'의 에블린과 '미저리'의 애니 윌크스보다 더 교활하고 악질적이다. 에블린과 애니는 자신이 좋아하는 특정 인물을 맹목적으로 쫓아다니지만, 그레타는 자신의 틀에 맞춰 젊고 순수한 불특정 다수의 인물들을 노린다. 그런 면에서 그레타는 망상과 광기가 상상을 초월하며 훨씬 끔찍하다. 넧플릭스에서 볼 수 있다.

 

뉴욕의 레스토랑에서 일하는 프랜시스는 친구 에리카 펜(마이카 먼로)의 아파트에 함께 살며 앞날을 계획한다. 프랜시스는 1년 전 어머니를 여의었고 아버지와는 사이가 좋지 않다. 어느 날 프랜시스는 지하철에서 누군가 두고 간 여성용 핸드백을 주워 가방 속 내용물의 주소를 보고 찾아간다. 그레타는 자신의 가방을 되돌려주러 온 프랜시스를 상냥하게 맞이하며 차를 대접한다. 그레타는 프랜시스가 어머니를 잃은 슬픔을 이야기하자 자신도 딸이 프랑스 파리에서 음악 공부를 하고 있어 떨어져 지낸다며 외로움을 토로한다. 그레타는 가방을 찾아줘 고맙다며 저녁 식사에 초대한다.

프랜시스는 그레타의 외로움을 덜어주기 위해 유기견 입양을 도와주는 등 가까워진다.

에리카는 프랜시스가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과 빨리 가까워지는 것을 걱정하지만, 프랜시스는 괜찮다고 한다. 프랜시스는 그레타가 외롭지 않도록 유기견 입양을 도와주고 더 많은 대화를 나누며 친해진다. 그레타가 가깝게 지내다 훌쩍 떠나버리면 어떡하냐고 하자 프랜시스는 껌딱지처럼 붙어 있을 것이라고 웃으며 말한다. 그러나 프랜시스는 그레타의 집에서 저녁 식사 준비를 하면서 양초를 찾다가 여러 개의 가방을 보고 깜짝 놀란다. 그 가방들에는 자신의 이름과 다른 여성의 이름이 적힌 종이가 붙어 있었다. 가방을 잃어버린 것이 사람을 끌어들이려는 농간임을 알게 된 프랜시스는 몸이 좋지 않다며 서둘러 그레타의 집을 떠난다.

이후 프랜시스가 연락을 끊자 그레타가 끊임없이 전화를 걸고 메시지를 남긴다. 그래도 프랜시스가 응답하지 않자 그레타는 프랜시스가 일하는 레스토랑에 찾아와 낮부터 밤까지 같은 자리에서 프랜시스를 지켜본다. 창 밖에서 그레타가 하루종일 자신을 쳐다보자 프랜시스는 놀라고 무서워한다. 프랜시스는 경찰에 신고하지만, 경찰은 지금 상황은 불법이 아니라며 조치를 취할 수 없다고 한다. 프랜시스는 그레타의 주변을 알아보던 중 그녀의 딸 친구로부터 뜻밖의 사실을 알게 된다. 그레타는 간호사였으며 그녀의 딸은 어릴 때 어머니에게 상자에 갇히는 고통에 시달리다가 4년 전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것이다.

프랜시스가 연락을 끊자 그레타는 집요하게 프랜시스에게 전화하고 주위를 맴도는 등 괴롭힌다.

그레타의 말이 거짓임을 알게 된 프랜시스는 그레타를 더욱 멀리하지만, 그레타는 레스토랑에 찾아와서 행패를 부리기까지 한다. 프랜시스는 에리카와 의논한 후 그레타에게 뉴욕을 떠날 것이라고 말하고 그레타도 이를 받아들이는 듯 했다. 그러나 나중에 그레타는 진정제 탄 음료를 프랜시스에게 마시게 해 쓰러진 그녀를 집으로 데리고 와 묶어버린다. 그레타는 프랜시스를 거실 옆 숨겨진 방에 가둬버리고 프랜시스는 그 곳에서 숨져가는 다른 여성을 발견하고 소스라치게 놀란다. 프랜시스가 사라지자 아버지는 사설 탐정 브라이언 코디(스티븐 레아)를 고용하고 그는 그레타의 집을 찾아낸다.

 

이 영화를 만든 아일랜드 출신의 닐 조단 감독은 인상적인 작품들을 많이 만들었다. 그의 작품 중 국내에서 좀 유명한 작품은 '뱀파이어와의 인터뷰'(1994)일 것이다. 벌써 나온지 30년이 다 된 이 작품에는 젊은 시절의 톰 크루즈와 브래드 피트, 안토니오 반데라스, 크리스찬 슬레이터, 어린 시절의 커스틴 던스트 등 스타 배우들이 출연했고 영화도 좋은 평가를 받았다. 그에 앞서 나온 '크라잉 게임'(1993)은 아일랜드 내전의 비극과 인간애를 다룬 뛰어난 작품으로 영화 속 충격적 장면-여성인 줄 알았던 인물이 남성으로 밝혀지는 순간-이 당시 관객들을 놀라게 하기도 했다. 또 아일랜드 독립 전쟁의 지도자의 생애를 그린 '마이클 콜린스'(1997), 험악한 환경에서 괴팍하고 뻔뻔하게 성장하는 소년의 이야기를 담은 '푸줏간 소년'(1999), 비극적인 로맨스 영화 '사랑의 슬픔 애수'(2000), 여자가 되고 싶은 남자 아이의 이야기를 다룬 '플루토에서 아침을'(2007) 등이 그의 작품들이다.

프랜시스 주위를 맴돌던 그레타는 어느 날 프랜시스에게 진정제를 탄 음료를 먹여 정신을 잃게 한 후 집으로 데리고 와 묶어버린다.

그의 작품은 주로 음울한 환경속에서 비정상적인 인물들이 빚어내는 뒤틀린 이야기를 담고 있다. '마담 싸이코'도 이 틀에들어맞는 작품이다. 극중 인물 그레타는 겉으로는 차분하고 예의 있어 보이지만 망상과 광기로 뒤엉킨 인물이고 주요 무대인 그녀의 집 안은 빛을 차단해 어둡다. 그레타 라는 인물을 더 탐구하지 않을까 했지만, 닐 조던 감독은 그레타와 프랜시스 간의 사건에 집중한다. 그래서 영화가 한 발 더 나아가지 않은 데 대한 아쉬움이 남지만, 만듦새는 뛰어나다. 그 공은 오롯이 차가운 표정으로 광인의 면모를 드러내는 이자벨 위페르의 강렬한 연기에 돌아가야 할 것이다.

 

사족-닐 조던 감독은 영국, 아일랜드와 미국 할리우드를 오가며 영화를 만들었으며 스타급 배우들을 동원할 수 있는 힘을 가졌다. 그의 영화에 톰 크루즈, 브래드 피트, 줄리안 무어 등 미국의 스타 배우들 외에 영국과 아일랜드의 스타 배우들인 리암 니슨, 랄프 파인즈, 콜린 파렐, 킬리언 머피, 브렌단 글리슨 등도 많이 나왔다. 그러나 닐 조던 감독의 페르소나는 단연 스티븐 레아 라는 배우이다. 국내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스티븐 레아는 유명 스타는 아니지만 빼어난 연기력을 갖추었고 이 포스팅에서 다룬 닐 조던 감독의 모든 작품에 주, 조연으로 얼굴을 내밀었다. '마담 싸이코'에서는 사설 탐정 브라이언 코디 역으로 짧게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