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3. 20. 00:00ㆍ영화 파노라마
디즈니플러스의 신작 '보스턴 교살자'에 대해 올린 이웃님의 포스팅을 보고 난 직후 이 영화를 바로 시청했다. 이 영화가 제일 좋아하는 범죄 스릴러 장르의 영화였기 때문이었다. 범죄 스릴러는 빠져들 수 밖에 없는 장르이다. 범죄 스릴러 영화는 평범한 일상을 살면서 때로 무료함에 지칠 때 우리를 흥분과 긴장 속으로 몰아넣어 지루함에서 벗어나게 해주기 때문이다. 게다가 제목부터 무섭지만, 호기심을 끌어당기는 '보스턴 교살자'이다. 1960년대 초에 미국의 보스턴에서 일어난 여성 연쇄 살인 실화에 영감을 받아 만든 영화라고 하니 더욱 흥미로울 것 같았다.
1962년, 보스턴에서 여성 3명이 잇따라 살해되는 사건이 일어나자 레코드 아메리칸 신문의 여기자 로레타 매클로플린(키이라 나이틀리)이 관심을 보인다. 생활부 기자였던 그는 편집국장 잭(크리스 쿠퍼)으로부터 담당 분야가 아니라며 취재할 수 없다는 말을 듣는다. 그러나 그녀가 짬을 내 취재한 결과 피살자들이 스타킹으로 목졸라 살해됐으며 이중 매듭의 나비 모양 스타킹을 범인이 남겼다는 점을 알아낸다. 로레타가 이를 잭 국장에게 보고하며 같은 범인에 의한 연쇄 살인 가능성이 있다고 말하자 잭은 그녀의 취재 내용을 1면에 게재하기로 하고 취재도 승인해 준다.
로레타의 기사가 1면에 게재된 후 보스턴 시민들은 충격과 두려움에 빠진다. 보도의 파장이 커지자 보스턴 경찰서장이 잭 국장을 찾아와 정확하지 않은 보도로 공포를 야기한다며 강력하게 항의한다. 이에 잭 국장은 머리 아프다며 로레타에게 사건 취재를 그만 두라고 말한다. 로레타가 잭 국장의 지시를 받아들이지 않고 그를 설득해 취재를 이어나가려 하자 잭 국장은 유능한 여기자 진 콜(캐리 쿤)과 같이 일하라고 한다. 로레타는 끈기있게 취재하고 진은 마당발로 경찰 곳곳에 정보원이 많아 둘의 협업은 큰 성과를 낸다. 신문사는 잘 팔리는 신문을 더 많이 팔기 위해 두 여기자의 사진까지 기사와 함께 싣는다. 로레타는 사건 담당 형사인 짐(알렉산드로 니볼라)과 정보를 교환한다.
보스턴 도시 전체가 패닉에 빠진 가운데 살인 사건은 끝나지 않는다. 처음에는 나이 든 여성 5명이 살해 당하고 이후에는 젊은 여성들이 죽는 등 범죄 대상의 패턴도 변화를 보인다. 신문에 사진이 실리는 바람에 얼굴이 알려진 로레타는 다른 피해자들처럼 생명의 위협을 느끼는 위기에 빠지기도 한다. 그녀의 직업과 열정을 처음에는 이해해 주던 남편은 로레타가 점점 더 일에 파묻히자 못마땅해 하며 갈등도 일어난다. 로레타와 진은 단순한 취재 열정을 넘어서 여성들의 생명을 지켜야 한다는 사명감을 지니게 되었고 그러한 노력으로 범인의 윤곽을 좁히는 단서들을 포착한다. 하지만 보스턴 경찰은 단서들에 소홀하고 범죄 파장이 커지는 것을 막는 데 애쓸 뿐이다.
로레타와 진이 피살 당한 여성 중 한 명이 스토킹에 시달리고 있었다는 사실을 보도하자 스토킹하던 남성 등 몇 명이 용의선상에 오르고 앨버트 드살보 라는 인물이 범인으로 특정된다. 수사 책임자인 존 보텀리의 심문에 드살보는 뜻밖에도 범행 사실을 순순히 자백하지만, 확실한 증거가 없다. 로레타는 수사 결과가 개운치 않다고 느끼지만 경찰은 그대로 사건을 매듭짓는다. 그러나 시간이 좀 더 지나 뉴욕과 미시간주 앤 아버 등에서 여성이 목졸려 죽는 사건이 다시 일어나고 그 지역의 담당 형사들은 보스턴 경찰이 협조를 제대로 해주지 않자 로레타에게 도움을 호소한다. 로레타는 진과 함께 다시 취재에 나서는데 뜻밖의 상황이 펼쳐진다.
이 영화는 선댄스 영화제에서 재능을 드러낸 맷 러스킨 감독이 만들었고 유명한 사건에 대해 두 여기자가 파고드는 데에 매력을 느낀 거장 리들리 스콧 감독이 직접 제작에 나섰다고 한다. 영화는 비교적 긴장감을 잘 유지하고 짜임새도 좋아 10점 만점에 7.5점 내외의 평점을 받을 만하다. 또 이 영화는 1968년에 나온 리차드 플레이셔 감독의 동명 영화 '보스턴 교살자'를 리메이크했다. 리차드 플레이셔 감독은 '유명 영화의 무명 감독'이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뛰어난 영화를 많이 만들었지만 대중들에게 잘 알려지지는 않은 인물이었다. '살인의 추억'의 봉준호 감독과 '큐어'라는 탁월한 스릴러 영화를 만든 일본의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이 1968년 작 '보스턴 교살자'에 영향을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1968년 작품은 존 보텀리가 범인을 쫓다가 앨버트 드살보를 범인으로 체포하는 과정을 매우 탁월하게 담아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2023년 작품은 두 여기자가 주인공으로 다른 접근법을 취하며 범인인 줄 알았던 앨버트 드살보가 진범이 아니며 복수의 다른 범인들이 있다는 점을 암시한다. 그리고 사회적 편견에 시달리고 가정과 직장 생활을 병행해야 하는 이중고 속에서도 끈기를 보이는 여기자들의 두드러진 활약, 사건에 몰입하기 보다는 파장을 막는 데에 더 많이 애쓰는 경찰의 게으름과 무책임함을 드러내고 꼬집는다.
50년도 더 된 미국의 과거 이야기지만, 이 영화는 여전히 변하지 않는 오늘의 현실 때문에 설득력을 잃지 않는다. 여성 혐오 범죄는 우리나라에서 2016년 강남역 화장실 살인 사건 이후 계속 일어나고 있고 멕시코는 여성들이 끊임없이 살해되는 최악의 국가이다. '보스턴 교살자'들을 보면 남성들은 별 두려움이 없는 반면 여성들은 공포에 질려 있다. 시간이 많이 흘렀지만, 요즘에도 이어지는 현상들이며 시간과 관계없이 인간 세상의 변치 않는 악폐인 것 같다. 영화에서 로레타는 두려움 속에서도 용기를 잃지 않는 여성의 표상같은 인물로 여성들의 용기가 어두움을 밝힐 수 있음을 전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