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3. 10. 00:00ㆍ영화 파노라마
범죄 사건의 뉴스를 볼 때마다 겉으로 보이는 평화로운 세상의 어두운 구석에서 온갖 악행이 넘치고 있음을 알게 된다. 특히 살인 사건은 소식을 접하는 사람의 온 신경을 순간적으로 마비시키는 극악무도한 범죄이다. 도대체 어떤 인간이 무엇 때문에 다른 사람의 생명을 앗아간 것일까? 살인자는 어떻게 생겨먹은 인간이길래 그토록 잔인한 죄를 거리낌없이 저지르는 것일까? 피해자의 억울한 삶은 어떻게 보상받아야 하며 죽은 이의 가족들은 얼마나 깊은 상처 속에서 살아가야 할까? 이처럼 '살인'은 아무런 관계 없는 사람들까지도 충격에 빠트리는 잔학한 행위이다.
'살인'은 한편으로 보통 사람은 생각할 수도 없는 행위에 대한 호기심을 수반한다. 사람의 생명을 빼앗는 악행에 치를 떨면서도 왜 그런 행위를 했을까 하는 궁금증이 솟아오르게 된다. 비극과 분노와 슬픔이 점철된 사건에 대해 호기심을 말한다는 것이 조심스럽지만, 사실이 그러하다는 것을 수긍할 수밖에 없다. 요즘에는 살인 사건이 신문 지면에 잘 보도되지 않거나 보도되더라도 간략하게 처리되지만, 지금보다 세상이 훨씬 덜 복잡했던 20~30년 이전의 세상에는 살인 사건이 발생하면 범인을 검거하기까지 자세히 연속적으로 보도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것은 범인을 잡기 위한 사회적 요구이자 압력이며 사회 질서를 바로 세우라며 소리치는 외침이었을 것이다. 한편으로, 이처럼 그럴 듯한 명분의 가장자리로 슬며시 선정성과 호기심이 스며든다. 호기심을 충족시킬 수 있는 범죄 행위에 대한 자세한 보도가 범죄 수법을 알려 오히려 범죄를 조장하고 범인들에게 검거망에서 벗어날 수 있는 정보를 주게 된다는 비판이 나오는 것이 그 때문이다. 최근에 상습적인 성범죄를 저질러 감옥에 수감중인 사이비 교주 정명석 등을 다룬 넷플릭스의 '나는 신이다:신이 배신한 사람들' 다큐시리즈가 너무 선정적이라는 비판을 받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디즈니 플러스의 '어떻게 살인자를 잡았는가'는 살인 범죄를 다루는 미국 다큐멘터리 시리즈이다. 모두 9건의 살인 범죄를 추적하고 범인을 잡기까지의 과정을 담고 있다. 살인자는 누구이며 피해자는 어떤 사람이었는지, 경찰과 검찰이 범인을 잡기 위해 어떠한 노력을 기울였는가 하는 것을 내용으로 한다. 피해자의 유족들도 나와 사건에 대해 이야기하고 범인에 대한 분노를 터뜨리고 죽은 이들을 애도한다. 범죄와 관련된 장면은 최소한으로 노출을 자제함으로써 선정성을 피하려는 의도를 읽을 수 있다.
그럼에도 범죄 다큐 시리즈를 보게 하는 시작점은 시청자들의 호기심일 것이다. '좋은 다큐'와 '나쁜 다큐'의 차이점은 이 호기심의 영역을 가볍게 뛰어넘을 수 있느냐 마느냐일 것이다. '어떻게 살인자를 잡았는가'는 사건에 대한 호기심을 넘어서 피해자가 가족과 이웃, 친구들에게 사랑받았던 사람으로 기억해야 한다는 점에 방점을 찍고 법망을 피하려는 살인범의 행각, 끈질기게 추적하는 수사 당국의 집념, 유족들의 목소리까지 담아냄으로써 '좋은 다큐'가 되려는 취지를 충분히 전달한다.
'어떻게 살인자를 잡았는가'의 제4화는 '누구나 제시에게 주목했어요'라는 제목으로 소개된다. 2004년 6월에 사랑이 넘치는 가족의 일원이었고 친구들 사이의 인기남이었던 미주리대 남학생 제시 발렌시아가 대학 바깥 자신의 집 근처에서 살해된 채 발견된다. 제시는 활달하고 즐거운 분위기를 이끄는 학생으로 동성애자였으며 하고 싶은 말을 속에 담아두지 않는 성격이었다. 누가 그를 살해했을까? 경찰은 죽기 며칠 전 파티에서 제시와 만난 두 동성애자 남성에 초점을 맞췄으나 이 중 한 명은 알리바이가 뚜렷해 수사 대상에서 제외됐다. 또 한 명의 용의자는 뜻밖에도 경찰관이었다. 그는 파티가 너무 소란스러워 시끄럽다는 주민의 신고로 출동한 파티 현장에서 제시를 만났는데 그는 왜 수사선상에 올랐을까?
제 8화 '무덤에서 말을 건 거에요'도 관심을 끌었던 사건이다. 사우스캐롤라이나주의 작은 마을 출신인 흑인 청년 존 레이는 조지아주의 아틀랜타시로 와서 적응해 나가던 중 2004년 5월에 자신의 집안에서 피살된 시체로 발견됐다. 그의 집 주변에 주차돼 있던 그의 차는 없어졌다. 그는 변호사가 되려는 목표를 품고 아틀랜타의 국선 변호사 사무실의 보조원으로 일하고 있었다. 그 역시 가족과 친구들로부터 사랑받던 신망이 두텁고 착한 청년이었으며 동성애자였다. 경찰은 면식범의 소행으로 보고 수사망을 좁히던 중 존 레이와 말다툼을 벌였던 집 주인과 존 레이에게 돈을 달라며 갈등을 빚었던 그의 전 애인이 용의선상에 올랐다.
그러나 결정적 증거가 없어 그들은 수사 대상에서 제외됐고 이 사건은 범인을 잡지 못한 미제 사건이 되고 만다. 7년 뒤인 2011년에 경찰 '미제 사건 해결팀'이 짜여졌고 한 형사의 끈질긴 노력이 사건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낸다. 그는 사건 관련 자료를 샅샅이 다시 들여다봤고 존 레이의 차량 트렁크에 있던 서류 더미에서 마침내 중요한 단서를 발견한다. 2004년 사건 발생 직후 존의 차량은 누군가가 훔쳐타고 가다 교통 사고를 낸 채 도주했고 경찰은 존의 피살 사건과 존의 차량 교통사고를 처음에는 관련성 있는 사건으로 파악하지 못했다. 7년이 지나 재조사하는 과정에서 모든 자료에 철저히 집중했고 드디어 사건을 풀어낼 돌파구를 마련해낸 것이었다.
이 외에 '어떻게 살인자를 잡았는가'는 14세 여자 아이 캔디스 파치먼트 실종 사건, 성 정체성을 SNS로 알린 니키의 실종 사건, 뉴욕 맨해튼의 여성 스토킹 살인범, 14세 여아 샤니샤 포브스 실종 사건, 미시간 주 작은 마을의 에이프릴 밀샙 피살 사건, 대학생 브랜디 로신 실종 사건, 파충류 사육사 벤 레닉 사망 사건 등을 소개한다. 매 회가 독립적인 사건으로 구성돼 있어 차례로 보지 않아도 된다. 사건 해결에 매달리는 경찰들은 살인범을 잡아 정의를 세우려는 목적과 함께 유족들의 한을 풀어주는 데에 온 노력을 기울인다. 이 다큐 시리즈를 통해 삶의 꽃을 피우기도 전에 떠난 사람의 원혼을 달래고 남겨진 이들의 깊은 상처를 보듬는 것이 사건 담당 경찰관들을 움직이는 큰 동력임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