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3. 9. 00:00ㆍ영화 파노라마
어른이 된 이후의 삶을 단순화해 보면 혼자 지내거나 결혼해서 살거나 이혼해서 혼자가 되거나 하는 형태일 것이다. 이혼한 후 재혼, 삼혼하는 경우도 있겠다. 요즘 흔히 쓰이는 '지옥'이라는 단어를 결혼과 이혼 뒤에 붙이는 것을 볼 수 있다. 결혼했지만 삶이 행복한 것이 아니라 지옥같고 그래서 이혼하지만, 그것은 새로운 형태의 '지옥'이 될 수도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오은영 리포트-결혼 지옥'이라는 제목의 TV 프로그램을 보면 큰 갈등을 빚으며 사는 부부들의 삶이 '지옥'과 다름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디즈니 플러스에서 볼 수 있는 미국 드라마 '사랑 이후의 부부, 플라이시먼'(2022년 11월 출시)은 한때 사랑해서 결혼했고 14년간 아이 둘을 낳고 잘 살다가 메꿀 수 없는 갈등 끝에 이혼한 부부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여성 작가 태피 브로데서애크너의 인기 소설이 원작인 작품으로 섬세한 묘사와 유머가 곳곳에 배여 있다. 드라마의 주인공은 토비 플라이시먼(제시 아이젠버그)-레이철 플라이시먼(클레어 데인즈) 부부이고 토비의 대학 시절부터의 절친 리비 엡스타인(리지 카플란)과 세스 모리스(아담 브로디), 토비와 레이철 사이의 어린 딸 해나 플라이시먼(메아라 마호니 그로스)과 동생인 아들 솔리 플라이시먼(맥심 스윈톤) 등이 주요 등장인물들이다.
시즌 1의 이 8부작 드라마를 다루기에 앞서 주인공 조합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데이비드 핀처 감독의 뛰어난 영화 '소셜 네트워크'(2010년 개봉)에서 조금은 비호감인 캐릭터 역을 했던 제시 아이젠버그와 바즈 루어만 감독의 '로미오와 줄리엣'(1996)에서 줄리엣 역을 했고 '홈랜드'의 두드러진 여주인공이었던 클레어 데인즈가 부부 사이로 나오다니 좀 어울리지 않아 보였다. 제시 아이젠버그는 '소셜 네트워크'에서 '페이스북'을 창업한 마크 저커버그의 대학생 시절을 연기했는데 소통의 SNS를 창조한 천재이면서도 소통에는 서툴렀던 인물을 잘 연기했다. 그는 영화 속에서 미숙한 대인 관계로 미모의 여자친구 에리카(루니 마라)를 떠나보내기도 한다.
제시 아이젠버그는 마크 저커버그 역할에 안성맞춤인 배우였다. 아이젠버그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저커버그와 같은 유대인이었고 그리 잘나지 못한 외모에 자기만의 세계에 빠지면서 공감 능력은 좀 떨어져 보이는 괴팍한 천재의 느낌을 잘 표현했다. '사랑 이후의 부부, 플라이시먼'에서도 제시 아이젠버그는 그와 비슷한 역할을 맡았다. 그가 연기한 토비는 여자들의 눈길을 받지 못하는 비인기남이었지만 자신과 너무 다른 아름다운 외모의 레이철과 결혼하게 된다. 레이철이 토비를 편안해하고 재미있어했기 때문이었다. 어울리지 않아 보이는 커플은 이런 연유로 맺어졌다.
이 드라마는 제목처럼 토비와 레이철이 이혼한 이후의 이야기를 주로 다룬다. 두 부부에 초점이 맞춰지면서 나중에는 토비의 친구인 리비와 세스의 이야기도 풀어낸다. 부부의 이혼을 다루지만 어둡기만 한 것은 아니고 오히려 밝고 경쾌하다. 드라마는 토비의 친구이지만 중간자이고 객관적 입장에 설 수 있는 리비의 내레이션으로 전개된다. 처음에는 흐름이 빠르기 때문에 적응하는 것이 어렵게 느껴질 수도 있다. 미국 드라마는 무거운 이야기도 가볍게 풀어내는 특징이 있는데 이는 한국 팬들에게 어느 덧 익숙해진 방식이기도 하다.
그래도 부부의 이혼 이야기가 밝기만 할까. 어두운 비밀과 사연이 드러나고 무거운 분위기가 드리우기도 한다. 또 부부의 이혼 이야기에 세 친구의 돈독한 우정과 어른들의 노골적인 사생활도 함께 담긴다. 그래서 이 드라마는 미국 드라마 '프렌즈', '섹스 앤 더 시티'에다 결혼에서 이혼에 이르는 과정을 생생하게 드러내 호평을 받은 노아 바움백 감독의 영화 '결혼 이야기'(2019년 개봉)를 합친 것 같은 이야기를 담아낸다. 영화와 드라마에서 너무 많이 다뤄온 사랑과 결혼, 이혼 이야기지만 그 형태가 너무나 각양각색이고 사연도 다르기에 이 드라마가 전하는 이야기도 새롭게 느껴진다. 그리고 이 드라마의 주제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영원한 관심사이기도 하다. 제시 아이젠버그와 클레어 데인즈 등 배우들의 연기는 좋다. 특히 클레어 데인즈의 연기는 군계일학이다.
간 전문 의사인 토비는 연예 기획사를 운영하는 레이철과 헤어진 이후 신세계를 느끼게 된다. 데이팅앱을 통해 다양한 여성들과 만나고 잠자리도 가진다. 그러나 생활에 균형을 잡기가 힘들다는 것을 곧 알게 된다. 일을 하고 어린 딸과 아들도 챙겨야 한다. 레이철이 아이들을 맡아야 할 시간에도 나몰라라 하는 바람에 토비는 더 힘들어진다. 사실, 이들이 이혼한 이유 중 하나도 레이철의 자기중심적인 성격 때문이다. 레이철은 일 중독에 빠져서 성공을 열망하느라 아이들을 돌보는 데에 시간을 할애하지 않았다.
이들은 삶을 바라보는 가치관도 너무 다르다. 토비는 의사로서 환자들을 보살피고 치료하는 일에 보람을 느끼는데 레이철은 토비가 더 많은 수입을 올릴 수 있는 일자리 제안을 물리친 것을 받아들이기 힘들다. 레이철은 더 좋은 집에 살고 싶고 더 많은 것을 누리고 싶어 하는데 토비는 크게 부족한 것 없는 지금의 생활에 별 불만이 없다. 사실은 이런 차이 때문에 둘은 젊었을 때에 서로 좋아했다. 그래서 사랑하고 결혼했지만 세월이 지나면서 갈등은 커지고 사랑은 식어버렸다.
토비는 옛 친구 리비와 세스를 만나면서 상처를 달랜다. 특히 리비는 글쓰는 직업을 가진 사람으로 토비의 삶을 들여다 본다. 자신이 예전부터 좋아하지 않았던 레이철과 갈라선 토비를 전적으로 편들게 된다. 그러나 리비는 나중에 우연히 레이철을 만나 그녀로부터 그들의 결혼 생활에 대한 다른 관점의 이야기를 듣는다. 리비는 레이철의 힘든 성장 과정과 그로 인해 형성된 불안 심리 등을 듣고 레이철을 이해하고 안쓰럽게 생각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레이철에게는 남모를 비밀이 있었다. 리비와 세스에게도 고민이 있다. 리비는 중년에 접어들면서 좀 더 충실한 삶을 살고 싶은 욕구가 커지고 세스는 안정된 삶에 위기가 닥친다.
이런 흐름의 이야기를 지닌 '사랑 이후의 부부, 플라이시먼'은 웃기고 안타깝고 재미있고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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