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의 지금 뜨는 콘텐츠 '인터프리터'-시드니 폴락 감독의 말년기 작품, 니콜 키드먼의 빛나는 미모와 연기(공동 주연 숀 펜)

2023. 3. 7. 00:00영화 파노라마

 

영화 '인터프리터'에서 실비아 브룸(니콜 키드먼)은 UN 통역사로 일한다.

미국 할리우드에서 재능 있는 감독으로 기억되는 시드니 폴락(1934~2008)은 서정성이 뛰어나거나 그와 성격이 전혀 다른 스릴러 영화들을 잘 만들었다. 그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아웃 오브 아프리카'(1986년 국내 개봉)는 결혼한지 얼마 되지 않은 유부녀 메릴 스트립이 낭만적인 이상형의 외간 남자 로버트 레드포드에게 사랑을 느끼는 영화이다. 아프리카의 광활한 초원을 배경으로 존 배리의 아름다운 음악이 흐르는 가운데 펼쳐지는 두 남녀의 사랑 이야기는 이 영화에 빠져들게 만든다. 로버트 레드포드와 바브라 스트라이샌드의 오랜 기간에 걸친 러브 스토리 '추억'(The Way We Were·1973)과 더스틴 호프먼과 제시카 랭의 상큼한 러브 스토리 '투씨'(1983)도 시드니 폴락 감독의 아름다운 영화들이다.

폴락 감독은 또 법정 영화나 스릴러 영화 만들기를 즐겼다. '폴 뉴먼의 선택'(1981), '콘돌'(1989), '야망의 함정'(1993) 등은 그가 감독으로서 재능이 얼마나 뛰어난지를 제대로 보여주는 작품들이다. 폴락 감독의 스릴러의 특징은 이야기가 정교하게 잘 맞춰져 돌아가는 톱니바퀴 같은 느낌을 준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의 스릴러 영화는 집중해서 보아야 하고 영화가 끝났을 때 앞뒤가 찰떡같이 들어맞는 상황에 감탄사를 내뱉는 경우도 있다.

 

토빈 켈러(숀 펜) 요원은 실비아가 아프리카 소수 종족의 언어로 말하는 암살 음모를 엿들었다는 말에 오히려 그녀를 의심하게 된다.

2005년에 국내 개봉한 '인터프리터'도 시드니 폴락 감독의 스릴러 영화가 갖는 특징을 그대로 드러낸다. 폴락 감독의 전성기 시절에 만든 '콘돌' 만큼의 정교함은 아니지만 잘 짜인 플롯과 배우들의 호연으로 평균작 이상의 작품이 되었다. 원래 배우로 시작했던 폴락 감독은 연출을 하지 않을 때에는 연기 활동도 많이 했으며 이 영화에서도 켈러 요원의 상사 역으로 잠깐씩 출연한다. 이 영화가 개봉한 지 3년 후인 2008년에 시드니 폴락 감독은 암 투병을 하다 유명을 달리 해 이 작품이 마지막 작품이 되고 말았다.

 

아프리카 마토보 공화국. 사이먼 브룸과 아진 졸라는 협상을 위해 낡은 운동장에 갔다가 총격을 받고 죽는다. 협상을 주선했던 사진기자 필립은 차에 남았다가 목숨을 건지지만 자신이 친구들을 숨지게 했다며 자책한다. 미국 뉴욕의 UN. UN의 통역사인 실비아 브룸(니콜 키드먼)은 퇴근 후 놓아둔 물건을 가지러 UN 건물 통역 방송 음향실에 들렀다가 우연히 마토보 공화국의 '쿠'족 언어로 말하는 암살 음모를 엿듣게 된다. 그때부터 그녀는 정체 미상의 남자들에 쫓긴다. 차량이 뒤쫓고 누군가 그녀의 집을 지켜본다.

마토보 공화국 에드먼드 주와니 대통령 암살 음모에 대해 켈러 요원과 팀원들은 사전 차단을 위해 만전을 기한다.

그녀는 UN 경호팀의 토빈 켈러(숀 펜) 요원에게 자신이 엿들은 음모를 이야기하지만 켈러 요원은 그녀가 아프리카 종족의 소수 언어를 알아들었다는 것에 대해 오히려 그녀에게 의구심을 보인다. 때마침 며칠 후에 마토보 공화국의 에드먼드 주와니 대통령이 UN 총회에서 연설하기로 되어 있다. 주와니 대통령은 처음에는 마토보 공화국의 존경받는 지도자였으나 점차 타락한 독재자가 되면서 정치적 반대자들을 학살해 국제전범재판소에 회부해야 한다는 비난을 받고 있었다. 주와니 대통령은 이런 악화한 국제 여론을 되돌리기 위해 UN 연설에 나선 것이었고 암살 음모는 그를 향하고 있었다.

주와니 대통령의 반대파는 쿠만-쿠만과 아진 졸라가 이끌고 있었으나 쿠만-쿠만은 미국 뉴욕에서 정치 망명 중이었고 아진 졸라는 피살된 상황이었다. 쿠만-쿠만이 암살 계획의 배후자로 의심받고 있었으나 주와니 대통령측이 여론 반전을 목적으로 자작극을 벌일 가능성도 존재한다. 켈러 요원은 실비아의 알려지지 않은 과거가 점차 드러나면서 그녀에 대한 의심을 거두지 못하고 감시하면서 동시에 보호하는 한편 주와니 암살이 미국 내에서 이뤄지지 않도록 신경을 곤두세운다. 그런 와중에 실비아를 뒤쫓다 버스 폭탄테러 사건이 일어나고 주와니 대통령의 UN 방문일이 다가온다.

 

주와니 대통령의 UN 총회 연설 당일 켈러 요원은 초긴장 상태에서 암살 음모에 대응한다.

이 영화는 스릴러의 형식 속에서 마음의 상처가 있는 실비아 브룸과 토빈 켈러 요원의 낭만적인 로맨스를 살짝 내비친다. 정확히 말하면 로맨스는 아니고 로맨스 전 단계라고 해야겠다. 실비아는 가족을 테러로 잃은 여성이고 켈러 요원은 얼마 전 아내를 교통사고로 떠나보냈다. 켈러 요원은 실비아에 대한 의심을 거두지 않은 상황에서 그녀의 집 맞은 편 건물에서 그녀를 감시하다가 한밤중에 그녀와 전화 통화를 한다. 이 때 이들은 이전까지의 날선 대화들을 내려놓고 서로를 배려하는 애틋한 대화를 나누게 된다.

'인터프리터'는 또 아프리카의 독재자들에 대한 경종을 울리려는 목적도 있어 보인다. 영화 속 가상 국가인 마토보 공화국의 주와니 대통령이 당시 짐바브웨의 로버트 무가베 대통령을 모델로 한 것 아니냐는 말들이 떠돌았다. 무가베는 주와니처럼 처음에는 국민들의 존경을 받는 지도자였으나 장기 집권에 대한 욕심 때문에 정적을 살해하고 인권을 유린해 최악의 지도자로 손가락질 받은 인물이었다.

실비아는 떠나기 전 켈러 요원을 찾아간다. 그들은 내내 '강 반대쪽'에 있다고 말해왔으나 이제는 강 같은 쪽에 나란히 있다.

'인터프리터'는 모든 것을 제 자리에 돌려 놓은 채 행복한 결말을 맞이한다. 아마 이것이 시드니 폴락 감독의 한계일 수 있겠다. 할리우드는 오래 전부터 관객들이 기분 상하지 않게 객석에서 일어나게 해야 한다는 '해피 엔딩 콤플렉스'를 앓아왔는데 상업적 성공을 염두에 둔 점을 고려하면 이해하지 못할 바는 아니다. '해피 엔딩 콤플렉스'가 적용되는 영화들은 셀 수 없이 많다. 대표적인 방식이 클라이막스에서 쓸 데 없이 대사를 길게 하며 죽여야 할 때 죽이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주인공이 죽지 않고 반격에 나서거나 영화가 해피 엔딩으로 가도록 만든다.

'인터프리터'에서도 실비아가 마지막에 쓸 데 없이 대사를 길게 하는 장면이 나오며 이는 관객들이 해피 엔딩을 위한 장치라는 것을 쉽게 알아채게 한다. 시드니 폴락 감독 역시 할리우드에서 잔뼈가 굵었으며 할리우드의 DNA가 가득한 인물이기에 '해피 엔딩 콤플렉스'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바로 그 점 때문에 시드니 폴락 감독은 영화를 아주 잘 만들었지만 결코 '위대한 감독'이 되지는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