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3. 4. 00:00ㆍ영화 파노라마
세계적으로 가장 잘 알려졌으며 가장 인기 있는 작가 중 한 명인 미국의 스티븐 킹은 탁월한 이야기꾼이자 뛰어난 문장가이다. 그는 '해리 포터'시리즈의 조앤 K. 롤링을 감안하더라도 글을 써서 밥벌이를 하는 세상 모든 작가들 중 가장 많은 부를 축적한 작가이기도 할 것이다. 그는 또한 다작의 작가여서 매우 많은 작품들을 썼는데도 작품 대부분이 독자들의 사랑을 받는 놀라운 성과를 거뒀다. 그의 재미있는 작품들은 아주 많이 영화화되기도 했는데 상당수는 역설적이게도 흥행에 성공적이지 못했다. 감독들의 역량이 그의 작품의 향취를 스크린으로 옮기기에는 부족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브라이언 드 팔마 감독의 공포 영화 '캐리'(1976년 국내 개봉),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공포 영화 '샤이닝'(1980), 로브 라이너 감독의 '스탠 바이 미'(1986), '미저리'(1990), 프랭크 다라본트 감독의 '쇼생크 탈출'(1993), '그린 마일'(1999), '미스트'(2007), 테일러 핵포드 감독의 '돌로레스 클레이븐'(1995) 등은 훌륭한 작품들이다. 스티븐 킹은 초현실적인 공포와 긴장감 어린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장르 문학의 천재적 대가로 순수문학에 가까운 작품들도 찬사를 받았다. 스티븐 킹의 팬으로서 그의 많은 작품들을 읽었고 특히 '내 영혼의 아틀란티스'를 감명 깊게 읽은 기억도 떠오른다.
스티븐 킹은 언급된 훌륭한 작품들 중 '샤이닝'을 제외하고 모두 좋아했다. 스티븐 킹은 스탠리 큐브릭 감독이 외딴 호텔에 고립돼 미쳐가는 작가와 그 가족의 이야기를 끝까지 어둡게 밀고 나간 부분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고 한다. 스티븐 킹은 다른 작품들은 모두 좋아했으며 그 중 자신의 작품을 훌륭하게 각색한 '스탠 바이 미'를 가장 좋아했다고 한다. 나온 지 40년이 다 돼가는 '스탠 바이 미'는 오래 전에 보고 기억에 남았던 작품인데 최근에 넷플릭스에 올라와 다시 보게 되었다. 여전히 훌륭했고 예전에 느끼지 못했던 아련한 정서까지 와 닿아 더욱 좋았다.
미국 오레곤주의 작은 마을 리틀록에 사는 네 명의 소년들은 동네 청년의 이야기를 우연히 엿듣고 며칠 전 행방불명된 소년의 시체를 찾으러 마을 밖으로 향한다. 시체를 찾아 마을의 영웅이 되고 싶었기 때문이다. 섬세한 성격으로 이야기를 만들고 글쓰기에 재능이 있는 고든(고디) 라찬스(윌 휘튼), 알콜 중독인 아버지 밑에서 자라지만 리더십을 갖춘 크리스 챔버스(리버 피닉스), 2차대전 참전 용사인 아버지를 자랑스러워 하는 테디 뒤챔프(코리 펠드만), 착한 뚱보 번 테시오(제리 오코넬) 등 4명의 소년들은 준비물을 챙겨들고 길을 나선다.
소년들에게 마을을 벗어나는 일은 신나지만 겁나는 일이기도 하다. 이들은 철길을 따라 걸으며 도중에 여러 고초를 겪는다. 고약한 주인이 있는 고물상 가게에 들어갔다가 사나운 개에 쫓기고 지름길로 가려고 하천 위 철교를 걷다가 기차가 달려오는 바람에 철교 위를 빠르게 달려 겨우 위험에서 벗어나기도 한다. 숲 속에서 야영할 때는 짐승들의 울음 소리를 듣고 겁에 질려 서로 보초를 서가며 겨우 잠을 청한다. 이들은 아픔도 지니고 있다. 고디는 자기를 아끼던 형 데니(존 쿠삭)가 죽고 형을 사랑하던 아버지가 자신을 미워한다고 생각한다. 크리스는 자신의 가족이 사람들로부터 좋지 않은 평판을 받고 있어 자신의 삶도 실패할 것이라고 단정한다. 테디는 참전 용사인 아버지가 후유증으로 정신병원에 입원해 있고 이를 사람들이 이야기할 때마다 괴로워한다.
소년들은 목적지를 향해 가면서 여러 고초를 겪지만 소년답게 순수한 즐거움을 잃지 않는다. 서로 장난기 가득한 농담을 하고 다투기도 하면서 때로는 서로를 보듬기도 한다. 크리스는 고디에게 나중에 꼭 대학에 진학해서 훌륭한 작가가 되라고 말하고 고디는 그저 그런 삶을 살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크리스에게 반드시 같이 대학에 진학하자고 격려한다. 한편, 이들 외에 에이스 메릴(키퍼 서덜랜드) 등 동네의 더 나이 많은 형들도 소년의 시체를 찾으러 나선다. 이들은 목적지에 이르러 서로 만나게 되는데 시체를 서로 차지하려고 하다가 충돌하게 된다.
이 영화는 40년 가까운 세월이 흐르면서 어느 덧 '성장 영화'의 고전과도 같은 작품이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영화는 성인이 된 작가 고디가 어느 날 신문에서 어렸을 적 친구 크리스가 칼에 찔려 사망했다는 뉴스를 보고 슬퍼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크리스는 대학을 졸업하고 변호사가 돼 성공적인 삶을 살고 있었는데 식당 옆 자리에서 일어난 싸움에 휘말려 예기치 않은 변을 당하게 된 것이었다. 성인이 된 고디 역은 리차드 드레이퓨스가 맡았는데 이 영화에는 배우들의 어린 시절과 젊은 시절 모습이 나온다. 요절한 배우 리버 피닉스와 제리 오코넬의 아역 시절 모습과 존 쿠삭, 키퍼 서덜랜드의 젊었을 때 모습도 볼 수 있다. 이 영화의 실질적인 주인공인 고디 역의 윌 휘튼은 귀엽고 잘 생긴 모습으로 주목을 받았는데 그는 성인이 되어서도 배우 활동을 지속하지만 '식스 센스'의 아역 배우 할리 조엘 오스몬트처럼 큰 성공과는 거리가 멀었다.
또 로브 라이너 감독은 아역 배우들의 성격을 잘 규정지음으로써 그들의 연기가 훌륭하게 발휘되도록 했다. 라이너 감독은 윌 휘튼과 리버 피닉스, 제리 오코넬 등이 아이들 특유의 밝음과 즐거움, 때로는 의기소침해지는 모습을 매끄럽게 드러내도록 했고 그들 배역 간의 관계도 자연스럽게 소화하도록 이끌었다. 로브 라이너 감독은 '스탠 바이 미' 이후에 '해리가 셀리를 만났을 때'(1989년 개봉), '미저리'(1991년 개봉), '어 퓨 굿맨'(1992년 개봉), '버킷 리스트:죽기 전에 꼭 하고 싶은 것들'(2008년), '플립'(2017년) 등 다양한 장르의 뛰어난 작품들을 내놓았으며 실력있는 배우들로부터 극중 배역의 개성을 최대한 이끌어내는 데 능해 성공적인 결과를 낳을 수 있었다.
'스탠 바이 미'는 미국 영화이지만 돌아가고픈 어린 시절에 대한 향수와 성장해서 되돌아보게 되는 느낌 등에 대한 보편적인 공감을 이끌어냄으로써 훌륭한 '성장 영화'의 지위를 차지했다. 아이들이 짧은 여행을 마치고 마을로 돌아왔을 때 마을이 예전처럼 커보이지 않았다는 느낌은 그룹 동물원의 '혜화동'에 나오는 가사의 한 부분인 '어릴 적 넓게만 보이던 좁은 골목길에~'와 같은 맥락이다. 한때 죽자살자 했던 친구들이 자라면서 만남이 뜸해지고 소식이 끊겨 버리지만 간혹 소식을 듣게 되는 일도 우리 모두가 한번쯤 겪어봤던 일들이다. 그 어린 시절은 한때의 추억일지 모르지만 가슴 한켠에 따뜻한 느낌으로 남아 오늘의 우리를 충분히 살찌우는 밑거름이 된다. 영화에 나오는 벤 E. 킹의 유명한 '스탠 바이 미'(Stand by Me·1961년), 더 코데츠( The Chordettes)의 롤리팝(Lollipop)같은 노래는 당시의 시대적 배경을 나타내면서 옛 시절에 대한 아련한 정서를 상징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