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2. 28. 00:00ㆍ영화 파노라마
벤 애플렉처럼 재능 많은 인물은 어느 누군가에게는 '재수 없는 녀석'일 수 있다. 그는 잘 생긴 얼굴에 배우로서 뛰어난 연기를 하며 톱 클래스 수준에 올라 있다. 그렇게 따지면 브래드 피트나 톰 크루즈가 더 나을지도 모르지만 벤 애플렉은 가끔 영화 연출을 하는데 그가 출연한 영화들의 어느 감독보다 더 영화를 잘 만든다는 점이 그를 우월하게 만든다.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영화를 만든다면 반갑듯이 벤 애플렉의 영화가 나온다면 기대를 모으게 된다. 때마침 벤 애플렉은 농구 스타 마이클 조던을 광고 모델로 기용해 성공 신화를 쓴 나이키의 이야기를 다룬 '에어'를 올해에 내놓는다.
벤 애플렉은 1997년에 개봉한 '굿 윌 헌팅'의 탁월한 각본을 절친인 맷 데이먼과 함께 쓰고 영화에도 출연해 아카데미상 각본상을 받았다. 풍부한 재능을 알린 눈부신 데뷔였다. 이후 배우로 각광을 받았고 '가라, 아이야 가라'(2007년 개봉)로 감독 데뷔했다. '가라, 아이야 가라'는 미국의 유명한 범죄스릴러 소설가 데니스 루헤인의 원작 소설을 영화화한 작품으로 평론가들의 찬사를 받았다. 이후 범죄 스릴러 '타운'(2011년 개봉)과 주이란 미국 대사관의 미국인 인질 탈출 사건을 다룬 '아르고'(2012년)를 맵씨있게 만들어내 다시 박수를 받았다. '아르고'는 아카데미상 작품상을 수상했다.
이후에 야심차게 만든 '리브 바이 나이트'(2016년 개봉)는 흥행과 작품성 양 면에서 좋지 않아 그를 실망시켰으나 7년 만에 다시 '에어'를 들고 나오게 된다. 벤 애플렉이 감독과 주연을 겸한 작품 '타운'(The Town)은 보스턴을 무대로 한 범죄 스릴러 영화로 감독으로서 그의 특징을 나타낸 작품이다. 벤 애플렉은 캘리포니아 출신인데도 보스턴을 매우 사랑하며 연고 야구팀 보스턴 레드삭스의 광팬이기도 하다. 그런 때문인지 '타운'뿐만 아니라 '가라, 아이야 가라', '리브 바이 나이트' 모두 보스턴을 배경으로 한 범죄 스릴러물이다. '타운'을 제외한 두 작품은 보스턴 출신의 작가 데니스 루헤인의 작품으로 그는 벤 애플렉과 의기투합해 영화를 만들었다.
'타운'은 보스턴에서도 찰스타운이라는 지역을 배경으로 한다. 가난한 지역이고 이 곳 출신들은 대를 이어 범죄를 저지른다. 더그 맥레이(벤 애플렉)와 제임스 카플린(제레미 러너), 그리고 다른 두 명의 친구들은 어릴 때부터 찰스타운에서 함께 자란 사이로 이 지역의 우두머리 퍼거슨 퍼기 콜(피트 포스틀스웨이트)의 지시로 틈틈이 은행 강도를 벌인다. 그들은 매우 매끄럽게 일을 처리하지만, 더그가 인질로 잡았다 풀어준 은행 지점장 클레어 키시(레베카 홀)에 마음이 흔들리면서 상황이 꼬이게 된다. 더그는 자신이 범인 임을 알지 못하는 클레어와 만나게 되고 다혈질인 제임스는 위험해질 수 있다며 더그에게 그러지 말라고 말린다.
연이어 터지는 은행 강도에 신경이 날카로워진 FBI의 아담 프롤리 요원(존 햄)은 제임스의 여동생이자 더그와 과거에 사귀었던 크리스타(블레이크 라이블리)에게 다가가 더그에 대한 정보를 알아내려 한다. 더그는 클레어와 만나면서 감옥에 있는 아버지에 대해 사실을 말하지 않고 어릴 때 어머니가 자신을 버리고 집을 떠났다고 말한다. 더그는 클레어와 새로운 미래를 꿈꾸면서 더이상 은행 강도를 하지 않겠다고 하는데 제임스의 만류와 퍼기의 협박으로 어쩔 수 없이 다시 돈을 강탈하러 나선다. 크리스타도 더그에게 떠나지 말라고 매달린다. 이 과정에서 더그는 협박하는 퍼기로부터 자신이 알지 못했던 부모의 비밀을 듣게 된다. 더그는 제임스 등과 함께 대담하게도 보스턴 레드삭스가 뉴욕 양키스와의 홈 경기에 연일 만원 관중이 몰려 현금이 쌓인 팬웨이파크를 털러 나선다.
'타운'은 범죄자들을 주인공으로 한 영화 라는 점에서 조금 다르다. 범죄자인 더그와 제임스가 범죄를 저지르고 자신들의 삶을 이야기하는 반면 FBI와 경찰은 그들을 쫓고 잡는 데에만 역할이 국한된다. 더그는 클레어와 사랑하는 사이이고 경찰은 이들의 사랑을 방해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벤 애플렉은 감독이자 주연 배우로서 영화의 긴장감을 이어가면서 '범죄'와 '사랑의 낭만'이라는 쉽지 않은 두 주제를 매우 매끄럽게 녹여낸다. 그런 점에서 '타운'은 마이클 만 감독의 범죄 영화 '히트'(1996년 개봉)와 닮은 구석이 있다.
'히트'는 솜씨있는 범죄 집단의 우두머리 닐 맥컬리(로버트 드니로)와 그를 잡으려는 열혈 경찰 빈센트 한나(알 파치노)의 대결을 그린 작품이다. '히트'는 사연 있는 두 인물의 삶을 약간씩 드러내면서 그들의 대결을 긴장감 넘치면서도 약간은 낭만적으로 전달한다. 일에 지장을 줄까 봐 여자를 만나지 않으려는 닐이 젊고 아름다운 이디(에이미 브렌너먼)와 만나면서 이 영화에 서정적 요소를 불어넣지만, 두 사람의 관계는 빈센트와의 대결에서 냉정하던 닐을 흔들리게 한다.
'타운'도 더그와 클레어의 관계가 한 축을 이루면서 더그와 절친인 제임스의 갈등이 영화의 긴장을 자아낸다. 다혈질이고 말보다 행동이 앞서는 제임스는 클레어를 해칠 듯 하고 더그는 이를 막아서려 하는 점이 관객들을 불안에 빠지게 한다. 경찰은 이들을 감시하고 지켜보면서 틈새를 노려 한꺼번에 잡으려 하는데 이 모든 것이 총체적인 긴장을 유발한다. 무엇보다 '타운'은 '히트'처럼 주요 인물들의 이야기를 쌓으며 빠르지 않게 안정적 리듬으로 이어간다. 더그는 닐처럼 두뇌 회전이 빨라 보이며 냉정하고 이지적이기까지 하다. 또 제레미 러너는 아카데미상 조연상 후보에 오를 정도로 터프 가이인 제임스 역할을 매우 뛰어나게 연기한다. 범죄와 인물들의 이야기가 뒤섞이고 사랑의 감정도 교차하는 이 영화는 조금 천천히 진행되는 리듬 속에서 여러 이야기를 솜씨있게 담아냄으로써 다른 범죄 영화들과 차별화된다.
범죄자인 더그는 클레어와 함께 행복해질까? 아니면 경찰에 체포되거나 비참한 최후를 맞게 될까? 넷플릭스에 있는 이 영화의 결말을 보면 약간은 비현실적이어서 좋지 않다거나 새드 엔딩이 아니어서 다행이라는 여러 반응이 나올 수 있겠다. 더그는 클레어에게 선물과 함께 편지를 보내는데 이 장면에서 '쇼생크 탈출'의 마지막에 앤디 듀프레인(팀 로빈스)이 엘리스 보이드 레딩(모건 프리먼)에게 편지를 보낸 장면이 떠올라 따뜻하고 좋은 느낌이 들었다.
사족-'타운'의 두 번째 은행 강도 후 경찰과의 추격전 장면과 펜웨이파크 강도 후 추격전에서 현대와 기아차의 협찬을 받은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한국 차들이 대거 나온다. 당시의 모델인 현대 아반떼 HD, 베로나 MC, 소나타 트랜스폼, 기아 세라토가 등장하며 더그가 퍼기의 꽃가게에 도착할 때에는 뉴아반떼 XD가 나온다. 서민들이 많이 사는 찰스타운의 분위기를 나타내기 위해 현대와 기아차의 고급 차종이 아닌 일반형 차종들이 나온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