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부 영화의 세계를 확장한 넷플릭스 영화 '뉴스 오브 더 월드'-긴장된 서부의 세계에서 싹트는 휴머니티(ft. 톰 행크스, 헬레나 젱겔, 폴 그린그래스 감독)

2023. 3. 6. 12:07영화 파노라마

영화 '뉴스 오브 더 월드'의 포스터.

미국 영화 만의 장르인 '서부 영화'는 매우 흥미롭고 매력적이다. 서부의 개척자들과 총잡이들의 이야기를 담은 '서부 영화'들은 긴장감을 자아내고 무슨 일이 벌어질지 지켜보게 만든다. 서부 영화들이 과거에 워낙 많이 만들어지면서 권선징악류의 식상한 이야기들이 양산되기도 했지만, 무법자들이 설치고 법보다는 총에 호소하는 당시의 시대 상황은 평화로운 삶을 사는 오늘날의 관객들에게 갑자기 벌어지는 총격전의 세계로 빠져들게 한다. 편안하게 화면을 응시하던 관객들은 삽시간에 벌어지는 총격전 속에서 심장이 쫄깃거리는 경험을 맛보게 된다.

서부 시대에 법 집행을 위해 보안관이 있었고 나름의 신사도도 있었지만, 총잡이들은 점잖은 대화를 나누다가 어느 순간 날카로운 말로 충돌하며 순식간에 총으로 손을 가져간다. 총이 불을 뿜는 순간은 생과 사가 뚜렷하게 갈리는 끔찍한 순간이다. 다행히 주인공은 죽지 않고 악당들을 무찌른다. 주인공이 죽지 않는다는 설정은 관객들에게 뻔하면서도 안도감을 가져다 준다. 주인공은 고초를 겪더라도 살아남아 악당들을 무찌르게 돼 있으니까 마음 졸이지 않고 봐도 되는 것이다. 이처럼 긴장감 속에서 최소한의 편안함을 주는 구도는 오히려 관객들이 좋아하는 요소일 수도 있다.

남북전쟁 종전 후 남군 퇴역군인 제퍼슨 키드(톰 행크스) 대위는 문맹인 사람들에게 뉴스를 읽어주며 생계를 유지한다.

이제 서부 영화는 옛날처럼 많이 만들어지지 않지만 이따금 나올 때마다 새로움을 갖추고 있다. 언제를 기준으로 할지 불분명하지만, 옛날 서부 영화들은 정해진 틀이 있었다. 백인 총잡이들이 나쁜 인디언들을 무찌르고 선한 백인 총잡이가 나쁜 백인 무법자들을 처단하는 식이었다. 물론, 옛날 서부 영화에서도 선한 인디언들을 내세우는 영화들이 있긴 했으나 그것은 아주 소수에 그쳤다. 그러나, 어느 순간 차츰 바뀌었다. 그것이 백인 퇴역 군인이 인디언과 힘을 합쳐 인디언 땅으로 쳐들어오는 백인 군인들을 격퇴하는 '늑대와 함께 춤을'(1991년 개봉)부터인지, 아니면 과거의 악행을 숨기고 지내던 총잡이가 거친 보안관에 맞서는 '용서받지 못한 자'(1993)부터인지 선을 긋기가 불확실하나 대략 1990년대 초 그 무렵부터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2021년에 국내에 출시된 넷플릭스 서부 영화 '뉴스 오브 더 월드'는 새로운 흐름의 '웨스턴 무비'가 이어지면서 꽃을 피운 작품이라 볼 수 있다. 이 영화의 폴 그린그래스 감독은 '블러디 선데이', '플라이트 93', '그린 존', '캡틴 필립스', '7월22일' 등 현대의 비극적 사건과 인물을 소재로 한 영화나 '본 슈프리머시', '본 얼티메이텀', '제이슨 본' 등의 첩보 영화를 매우 뛰어나게 만들어왔는데 '서부 영화'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뉴스 오브 더 월드'는 거칠고 긴장된 서부의 세계에서 피어오르는 휴머니티 가득한 수작이다.

 

키드 대위는 우연히 만난 고아 소녀 조해나(헬레나 젱겔)를 맡기려 하다 잘 되지 않자 그녀를 직접 백부네 집으로 데려다주기로 한다.

남북전쟁이 끝난지 5년 후인 1870년, 남군 퇴역 군인인 제퍼슨 키드(톰 행크스) 대위는 텍사스의 마을들을 돌아다니면서 신문 뉴스를 읽어주며 살아간다. 음울한 구석이 있는 키드 대위는 뉴스를 전할 때에는 토크쇼를 펼치듯 뛰어난 입담을 선보여 인기가 많다. 문맹이며 외부 소식이 궁금한 사람들은 10센트를 내고 키드 대위가 전하는 뉴스와 이야기에 흥분하거나 박수치며 뜨겁게 반응한다. 어느 날, 키드 대위는 다른 마을로 이동하다 습격 속에서 살아남은 한 어린 소녀를 발견한다. 그 소녀는 금발에 파란 눈의 외모이지만 영어를 할 줄 모르며 인디언 말을 한다.

키드 대위가 알아본 결과 그 소녀는 독일계 이민자 가정에서 자랐던 조해나 리언버거(헬레나 젱겔)로 부모들이 인디언의 공격으로 죽은 뒤 그녀를 키우던 인디언 양부모마저 사망해 졸지에 고아가 된 소녀이다. 키드 대위에게도 뭔가 슬픈 사연이 깃들어 있다. 그는 고향 샌 안토니오에 아내가 있는데도 돌아가지 않고 유랑 생활을 하고 있다. 키드 대위는 조해나를 아는 집에 맡기려 하나 조해나가 달아나려 하자 어쩔 수 없이 그녀의 백부와 백모가 있는 곳에 직접 데려다 주기로 한다.

키드 대위는 조해나를 인신매매하려는 일당에 쫓기다가 조해나의 도움으로 그들을 물리친다.

그러나 그 길은 위험하기 짝이 없다. 키드 대위는 조해나를 인신매매로 넘기려는 일당들에게 쫓기다 겨우 그들을 물리친 후 사람들을 조종해 들소 가죽 벗기기 노역을 시키고 이익을 챙기며 그들을 지배하는 조직에 붙잡혀 다시 위험에 빠진다. 키드 대위는 자신을 알리는 내용이 담긴 뉴스를 읽어달라는 조직 우두머리의 말에 따라 뉴스를 읽다가 사람들을 교묘하게 충동질한 후 한 청년의 도움으로 그 곳에서 벗어난다. 이후 키드 대위와 조해나는 마차가 고장 나 걸어서 이동하다 모래 폭풍에 휘말려 고초를 겪지만, 우연히 인디언들을 만나게 되고 조해나가 그들에게서 말 한 필을 구해와 다시 목적지로 향한다.

'뉴스 오브 더 월드'는 당시의 풍속도를 그려낸 영화이다. 글을 아는 키드 대위가 문맹인 마을 사람들을 대상으로 뉴스를 읽어주는 장면은 흥미롭다. 무성영화 시대의 변사가 관객들을 웃기고 울리듯 키드 대위는 당시의 문화 오락거리인 '뉴스 읽어주기'를 능숙하게 해냄으로써 관객들을 쥐락펴락한다. 또 당시에 법망에서 벗어난 곳이 많다 보니 우매한 사람들을 조종하고 지배하며 편하게 살아가는 집단도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키드 대위와 조해나가 처음에 말이 통하지 않다가 조해나가 키드 대위를 믿게 되고 서로의 말을 약간씩 알아들으면서 정을 느끼게 되는 장면도 인상적이다. 조해나는 자신을 데려주려다 위험에 빠진 키드 대위를 두 어번 결정적으로 돕기도 한다. 두 사람은 또 아픈 상처가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키드 대위는 조해나에게 과거의 상처를 잊고 앞으로 '직선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말한다. 이에 조해나는 인디언 문화에서 영향받은 듯 세상은 순환하며 앞으로 나아가려면 상처도 짚어봐야 한다는 어른스런 말을 한다. 그렇게 그들은 다른 가치관을 이야기하면서도 서로의 상처를 감싸준다.

키드 대위와 조해나는 어려운 고비들을 넘긴 후 목적지에 닿는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새로운 앞날이 기다리고 있다.

영화 후반부에 키드 대위가 조해나를 백부에게 데려다주고 자신은 홀로 고향을 찾아가지만 영화가 거기서 끝나지는 않는다. 키드 대위가 그동안 고향에 돌아가지 않았던 사연이 밝혀지고 키드 대위가 조해나가 원하는 삶이 무엇인지도 알게 된다. 조해나가 원하는 삶은 키드 대위가 바라는 삶이기도 하다. 결말은 어두운 하늘이 걷히고 햇살이 비치듯 가볍고 유쾌하고 행복감이 느껴진다. 카드 대위는 어두운 구석을 떨쳐내고 만면에 미소를 띄운다. 조해나도 영화 내내 긴장하고 경직된 표정-영화 중반부에 잠깐 환하게 웃는 모습을 제외하고-에서 벗어나 마침내 처음으로 행복감에 젖은 백만불짜리 해맑은 미소를 보인다.

톰 행크스는 로버트 드니로나 알 파치노 처럼 '연기의 거장'이라 할 만하다. 어느 덧 노련한 연기자가 된 톰 행크스는 음울한 구석이 있지만 마음의 상처를 감추며 겉으로 평온한 신사처럼 행동하려는 키드 대위 역을 매우 탁월하게 연기한다. 조해나 역의 헬레나 젱겔도 아역 배우이지만 깊은 연기를 펼쳐 눈길을 모은다.

폴 그린그래스 감독이 영화를 이끌어가는 리듬감도 칭찬할 만 하다. 이 영화는 전체적으로 느릿하고 평온하게 진행되다가 조해나를 인신매매하려는 일당이 나타나면서 별안간 긴장된 액션의 세계가 펼쳐진다. 이어 사람들을 조종하는 집단에 잡혔다가 빠져나온 후 다시 모래 폭풍에 휩싸이는 긴장과 이완의 리듬을 반복한다. 이러한 영화 리듬의 변주 속에서 키드 대위와 조해나가 서로를 이해하는 감정은 더 깊어지는 앙상블이 훌륭하게 완성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