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1. 1. 00:00ㆍ영화 파노라마
2022년이 끝나가는 시점에 넷플릭스에 한국산 콘텐츠를 포함해 좋은 콘텐츠들이 대거 올라왔다. 넷플릭스는 이달 초 ‘헌트’, ‘한산 리덕스’를 올린 데 이어 ‘헤어질 결심’, ‘브로커’, ‘외계+인 1부’, ‘발신제한’, ‘방법: 재차의’, ‘경관의 피’, ‘앵커’, ‘보이스’, ‘연애 빠진 로맨스’ 등 올해와 지난 해의 한국산 화제작들을 콘텐츠로 내놓았다. 넷플릭스에 따르면 연말연시를 맞아 넷플릭스에서 새롭게 만나볼 수 있는 한국 영화는 약 340여편이며 내년 1월 7일부터는 ‘공조2: 인터내셔날’도 시청할 수 있다. 영화와 함께 송혜교가 출연하는 화제작 '더 글로리' 8부작도 넷플릭스의 야심작이다. 송혜교와 김은숙 작가, 안길호 감독이 손잡고 만든 작품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그러나 연말에 넷플릭스가 선물처럼 올린 작품들 중에 한국 작품들은 뒤에 이야기하기로 하고 '그린 북'을 먼저 소개하고 싶다. '그린 북'은 2018년에 개봉해 인기를 얻으며 관객들과 평론가들의 좋은 평가를 받았고 다음 해 제91회 아카데미 영화제에서 작품상, 각본상, 남우 조연상(마허샬라 알리)을 수상했을만큼 훌륭한 영화다.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전기 영화이자 음악 영화이자 백인과 흑인이 등장하는 로드 버디 무비이다. 인종차별 문제와 화합을 다뤄 좀 식상해 보이지만, 배우들의 탁월한 연기와 짜임새 있는 전개, 뛰어난 구성으로 이따금 매우 웃기면서 가슴이 따뜻해지고 감동을 자아낸다.
1962년 미국의 뉴욕. 나이트 클럽에서 진상 손님들을 제압하며 힘들게 돈을 버는 '해결사' 토니 발레룽가(비고 모텐슨)는 나이트 클럽이 한시적으로 문을 닫게 되자 가족 부양을 위해 새로운 일자리가 필요하다. 때마침 유명한 흑인 피아니스트 돈 셜리 박사(마허샬라 알리)가 남부 연주 여행을 차질없이 이끌 운전기사를 구하는데 토니가 그 일을 맡게 된다. 그러나 두 사람은 달라도 너무 다르다. 이탈리아계 백인인 토니는 욱 하는 성질에 곧장 주먹이 나가는 다혈질이자 '떠버리'로 불릴 정도로 말이 많고 돈 박사는 차분하고 합리적이며 준법 의식이 투철한 사람이다. 또 돈 박사는 흑인이지만, 클래식 연주자 답게 고상하고 우아하지만 백인인 토니는 거칠고 탈법을 일삼고 밑바닥 서민 정서를 갖고 있다. 특히 토니는 흑인을 싫어하지만, 돈을 벌기 위해 이를 감춘 채 돈 박사와 연주 여행에 나선다.
당시 인종 차별이 심했던 미국 남부지역을 흑인이 여행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로 이들의 앞에는 예기치 않은 일들이 닥친다. 백인 운전기사에 흑인이 뒷좌석에 앉은 모습부터가 사람들의 시선을 모으는데 돈 박사가 술집에서 봉변을 당하고 인종차별을 하는 경찰관에게 봉변을 당하는 일도 생긴다. 또 연주회 초청자들은 흑인 피아니스트를 정중하게 대우하지만 화장실은 건물 안이 아니라 바깥의 낡은 화장실을 쓰도록 하고 대기실은 창고나 다름없다. 천재 피아니스트로 명예가 올라갔지만, 백인들에게 인종 차별을 당하고 흑인들에게 이방인 취급을 받는 외로운 존재이다. 그러나 돈 박사는 시설이 허름한 흑인 전용 숙소에 머무는 등 차별적 대우를 묵묵히 받아들이고 오히려 토니가 화를 내게 된다. 토니는 돈 박사가 당하는 어려움을 해결하면서 연주회를 차질없이 소화하도록 돕지만, 돈 박사의 행동을 잘 이해하지 못한다.
백인인 토니는 오히려 흑인과 비슷한 의식과 행동을 보이고 돈 박사는 반대로 사고와 행동이 백인에 가까운 인물이다. 차로 이동하는 도중 토니는 자신이 좋아하는 리틀 리차드 등 흑인 가수의 음악을 틀어놓는데 돈 박사는 처음 듣는 음악이라며 질색한다. 식성이 좋은 토니가 프라이드 치킨을 게걸스럽게 먹어치우자 돈 박사는 기름이 묻는다며 꺼리는 것도 비슷한 모습다. 그러나 그들은 여행이 이어질수록 개인적인 이야기를 털어놓으면서 서로를 이해하고 가까와진다. 토니가 아내에게 보내는 안부 편지를 쓰는데 애를 먹자 지켜보던 돈 박사는 문구를 멋지고 매끄럽게 고쳐주고 토니는 돈 박사의 외로운 삶을 안타까와한다. 이런 과정을 거치며 돈 박사는 차츰 변화해 토니를 놀라게 하고 그들의 연주 여행이 끝나는 시간이 다가온다.
'그린 북'-흑인들이 주로 인종 차별이 심한 미국 남부를 여행할 때 유색 인종 전용 숙소와 식당 등의 정보를 담은 안내서를 이르는 말-의 피터 패럴리 감독은 동생 바비 패럴리 감독과 함께 '패럴리' 형제 감독으로 알려졌으며 유명한 '덤 앤 더머'시리즈, '내겐 너무 가벼운 그녀', '메리에게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 등 코미디 영화를 많이 만들었다. 그래서 피터 패럴리 감독이 진지하고 웃기고 감동적인 울림이 큰 영화를 만들었을 때 놀라는 평론가들이 꽤 있었다. 이 영화가 아카데미 작품상을 받을 당시 알폰소 쿠아론 감독의 '로마'와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의 '더 페이버릿:여왕의 여자'를 제쳐 논란이 일기도 했. '로마' 등이 '그린 북'보다 더 뛰어난 작품이라는 평가였는데 나중에 '그린 북'도 그 작품들 못지 않다는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비고 모텐슨은 이 영화 출연을 위해 체중을 20kg나 늘리는 정성을 보였으며 다혈질이고 무식하면서도 순수한 구석이 있는 토니 역을 탁월하게 소화했다. 그의 필모그래피에서 '그린 북'과 함께 2007년과 2008년에 개봉한 '폭력의 역사'와 '이스턴 프라미스'를 빼놓을 수 없다. 거장 데이비드 크로넨버그 감독이 연출한 이 폭력의 연대기 같은 작품들에서 비고 모텐슨은 어두운 폭력 조직에 몸 담은 냉정한 인물이면서 어느 순간 위기에 빠진 여성에 동정을 느껴 위험에 처하거나 폭력의 세계에서 빠져 나오려고 몸부림치는 모습을 두드러지게 표현했다. '이스턴 프라미스'는 현재 넷플릭스에 있다.
마허샬라 알리는 '그린 북'의 돈 박사 역으로 큰 주목을 받으면서 비중 있는 흑인 배우로 자리매김했지만, 그 이전에도 '문라이트'의 후안 역으로 아카데미 남우조연상을 받았고 '벤저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하우스 오브 카드', '헝거 게임:모킹제이', '루크 케이지', '스파이더맨:뉴 유니버스' 등에서도 눈에 띄는 연기를 보였다. '그린 북'에서는 우아하면서도 외로운 피아니스트였다가 점차 토니에게 마음을 열고 달라지는 모습을 탁월하게 연기했다. 그는 어머니와 외할머니가 모두 목사인 독실한 개신교 가정에서 자랐지만 20대 중반에 이슬람교로 개종하면서 성도 길모어에서 알리로 바꾼 것으로 전해졌다.
사족-마허샬라 알리는 시드니 포이티어로부터 비롯된 흑인 남자배우의 계보를 이을 만한 배우로 보인다. 오랫동안 모건 프리만과 덴젤 워싱턴이 대표적인 흑인 배우로 활약했으며 사무엘 잭슨, 로렌스 피쉬번, 쿠바 구딩 주니어 등도 돋보이는 연기 활동을 펼쳤다. 코미디 연기의 달인 격인 에디 머피, 액션이 눈부셨던 웨슬리 스나입스도 한 시대를 휘저었다. 70년대생 배우로 마허샬라 알리와 함께 치웨텔 에지오포를 들 수 있는데 치웨텔 에지오포가 조연급에 그친 반면 마허샬라 알리가 '그린 북'에서 돋보이는 주연급 연기를 펼치면서 더 주목받고 있다. '그린 북'에 비교되는 영화로 1990년 개봉작 '드라이빙 미스 데이지'가 있는데 백인 유대인 노부인과 흑인 운전기사의 우정을 그려 역시 그 해 아카데미 작품상을 수상했다. 모건 프리만이 흑인 기사 역을 맡아 노부인 역의 제시카 탠디와 호흡을 맞췄다. 그러나 '그린 북'과 '드라이빙 미스 데이지' 모두 백인과 흑인 간의 우정을 다뤘지만, '백인 시혜적 시각', '백인 구원자적인 스토리'의 영화라고 지적받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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