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징어 게임'을 잇는 넷플릭스의 '웬즈데이' 열풍-팀 버튼의 뒤틀리고 기괴한 세계와 제나 오르테가, 캐서린 제타 존스, 크리스티나 리치

2022. 12. 30. 00:00영화 파노라마

 

'웬즈데이'에서 주인공 웬즈데이로 나오는 제나 오르테가.

영화관에서 '아바타:물의 길'이 뜨거운 흥행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면 안방 극장의 OTT 서비스에서는 넷플릭스의 '웬즈데이' 열풍이 거세다. '웬즈데이'는 한 달 전인 지난달 23일 공개 직후 바로 주목을 받아 일주일 만에 전 세계 83개 국에서 1위를 차지, 넷플릭스 역사상 공개 첫 주에 가장 많이 본 드라마 시리가 됐다. 또 공개 3주차에 누적 시청시간 10억 시간을 돌파하는 기록을 세우며 역대 최고 흥행작인 '오징어 게임'과 '기묘한 이야기-시즌 4'의 인기를 따라잡고 있다. 이 8부작 드라마를 만든 감독이 바로 팀 버튼이기 때문에 시청자들이 그토록 열광하는 현상을 이해할 수 있다. 팀 버튼 감독은 그의 드라마 첫 연출작인 '웬즈데이'에서 그만의 기괴하고 뒤틀리면서 환상적인 세계로 시청자들을 끌어들인다.

'웬즈데이'는 미국의 인기 만화이자 문화 상품인 '아담스 패밀리'의 스핀 오프 작품이다. '아담스 패밀리'는 1930년대 후반부터 연재된 작품으로 기이하고 음울한 아담스 가족의 이야기를 담아 지금까지 큰 인기를 얻고 있다. 1960년대에는 TV 시리즈로, 1990년대에는 영화가 인기를 끌었고 2000년대 이후에도 애니메이션 시리즈를 선보이며 수 차례 리메이크됐다. 1992년에 국내에서 개봉된 '아담스 패밀리'는 배리 소넨필드 감독의 영화로 안젤리카 휴스턴, 라울 줄리아, 크리스티나 리치 등이 출연해 꽤 관객을 모았다. 2000년대 중반 국내에서 큰 인기를 모았던 MBC 시트콤 '안녕 프란체스카'도 '아담스 패밀리'의 영향을 받은 작품이었다.

'웬즈데이'에서 웬즈데이의 부모로 나오는 루이스 구스만과 캐서린 제타 존스

'웬즈데이'는 아담스 패밀리의 딸인 웬즈데이(제나 오르테가)가 주인공이다. 웬즈데이는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검은 색의 옷만 입고 무표정한 얼굴로 거친 독설을 마구 내뿜는 양갈래 머리 소녀이다. 좋아할 만한 구석이 별로 없어 보이는데도 이 드라마의 시청자들은 웬즈데이의 이상야릇한 춤을 따라하고 검은 색 일색의 고스룩(고딕 패션)도 따라 입고 있다. '오징어 게임'의 출연 배우들과 장면장면을 두고 전 세계 시청자들이 따라하는 현상이 되풀이되고 있는 것이다. 또 '아담스 패밀리'의 향수와 현재 MZ 세대의 문화 코드까지 작품에 담아내 세대를 아우르며 고르게 인기를 끌고 있다.

'웬즈데이'는 웬즈데이가 사고를 쳐 부모의 모교인 기숙학교 '네버모어'로 전학가면서 시작된다. 잔혹한 성격의 웬즈데이는 이전 학교에서 자신의 남동생을 괴롭힌 수영장의 남학생들에게 식인 피라냐어를 풀어놓는 끔찍한 복수를 해 학교를 떠나야 했다. 그녀는 이미 5년 간 8개 학교에서 퇴학 당했을 정도로 전력이 화려하다. 네버모어는 뱀파이어, 늑대인간, 세이렌, 고르곤 등 별종 학생들을 위한 학교로 아버지 고메즈(루이스 구스만)와 어머니 모티시아(캐서린 제타 존스)는 웬즈데이에게 '평범한 학교생활'을 하라고 당부한다. 그러나 웬즈데이는 '네버모어' 학교와 마을에서 잇따라 벌어지는 살인사건에 휘말리게 되고 여기에 자신과 자신의 가족이 관련돼 있음을 직감해 범인을 추적한다.

이 드라마에는 기괴한 등장 인물들과 함께 독설과 신랄한 유머가 곳곳에 포진한다. 다정한 성격의 아버지는 웬즈데이에게 "멋지구나, 우리 예쁜 죽음의 덫"이라고 부르고 어머니는 딸의 이름을 옛 민요 가사 '수요일에 태어난 아이는 우울하다'에서 따왔다며 웃는다. 올드 팬들의 향수를 자극하는 요소도 많다. 웬즈데이를 따라다니는 잘린 손 '씽'이 그러하고 네버모어의 유일한 '노미'(평범한 인간) 손힐 선생님 역의 크리스티나 리치도 반가운 얼굴이다. 그녀가 1992년 영화 '아담스 패밀리'에서 아역 배우로 웬즈데이를 연기했기 때문이다.

'웬즈데이'에 10대와 20대 시청자들이 빠져드는 이유도 분명하다. 네버모어의 별종 학생들은 틱톡·스냅챗 등 소셜미디어로 소통하고 웬즈데이의 룸메이트인 이니드(에마 마이어스)는 K팝을 좋아한다. 냉소적인 웬즈데이가 차츰 성장하는 모습도 청년 세대의 공감을 얻는다. 그녀는 주위 시선이나 평가에 신경쓰지 않고 자신을 긍정하면서 살아가지만 별종 친구들과 가까워지며 조금씩 변화한다. 또 웬즈데이를 위해 목숨까지 바치는 ‘씽’ 등도 마음을 끈다.

팀 버튼은 자신 만의 기괴하면서도 독창적인 상상력을 트레이드 마크로 승화시킨 감독이다. 1958년생으로 65세가 되어가는 나이이지만 그의 풍부한 상상력과 예민한 감각은 여전히 녹슬지 않고 있다. 1988년의 '비틀 쥬스', 1990년~95년의 '배트맨 1,2,3', 1991년의 '가위손', 1994년의 '에드 우드', 1995년의 '크리스마스 악몽', 1997년의 '화성 침공', 2000년의 '슬리피 할로우', 2001년의 '혹성 탈출', 2004년의 '빅 피쉬', 2005년의 '찰리와 초콜릿 공장'과 '유령 신부', 2010년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2012년의 '프랑켄 위니', 2015년의 '빅 아이즈', 2016년의 '미스 페레그린과 이상한 아이들의 집' 등 다양하면서도 독특한 필모그래피가 그를 잘 나타낸다. '가위손'의 아름다우면서도 슬픈 세계, 크리스마스에 대한 신랄함이 가득한 '크리스마스 악몽', 인간의 어리석음을 꼬집고 끔찍하면서도 웃긴 상상의 '화성 침공' 등 그만의 독창적인 작품들은 시간이 흘러도 선명하게 기억된다.

또 크리스티나 리치가 나온 것도 좋지만, 캐서린 제타 존스의 출연도 그 이상으로 반갑다. 1998년 '마스크 오브 조로'에서 안토니오 반데라스와 함께 나와 주목 받았던 그녀는 2001년 '트래픽'(스티븐 소더버그 감독), 2003년 '참을 수 없는 사랑'(조엘 코엔 감독), 2003년 '시카고'(롭 마샬 감독), 2004년 '터미널'(스티븐 스필버그 감독) 등에서 좋은 연기를 보였고 이후에도 연기 활동을 계속했으나 그 무렵부터 국내 개봉작들은 눈에 띄지  않았다. 크리스티나 리치는 2004년 개봉작 '몬스터'에서 여성 연쇄살인마 역할을 한 샤를리즈 테론의 동성 연인 역으로 나왔는데 그로부터 다시 18년이 지났고 그녀의 나이도 곧 43세가 된다.

 

사족-'웬즈데이'의 주인공 제나 오르테가는 만 20세의 샛별로 15세때부터 여러 편의 영화에 출연했으나 별다른 주목을 끌지 못했다. 그러나 '웬즈데이'에서 개성 강한 웬즈데이 역할을 인상적으로 소화해내면서 단숨에 인기 배우가 됐다. 배우는 역시 작품 만나기 나름인가 보다. 드라마의 도입부에서 웬즈데이 역의 제나 오르테가가 남동생의 복수를 위해 학교 복도를 걸어갈 때의 무표정한 얼굴, 그리고 수영장에서 식인 피라냐를 풀어놓을 때의 통쾌함(?)은 시청자들을 단숨에 사로잡을 것이다. 그리고 주기적으로 흘러나오는 음악은 장면에 어울리지 않는 듯하면서도 조화를 이뤄 가슴을 울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