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봉작, 주지훈의 '젠틀맨' 볼 만할까?-왜 어떤 영화들은 관객들이 외면하나?

2022. 12. 29. 00:00영화 파노라마

영화 '젠틀맨'에서 주지훈은 검사 행세를 하며 누명을 벗으려는 흥신소 사장 역할을 한다.

 

2022년이 저물어가는 마지막 주의 영화 개봉작들을 살펴보니 주지훈이 주연을 맡은 '젠틀맨'이 눈에 띈다. 영화를 보지 않은 상태에서 느끼는 감이 있는데 이 영화가 썩 끌리지는 않는다. 굳이 재미없을 것이라고 단정할 수도 없다. 영화를 보지 않더라도 이 영화는 잘 만들었을 것이고 재미도 있을 것이라는 예감으로 끌리는 영화가 있다. 그런 영화가 많지는 않으며 그런 촉이 왔다 하더라도 다 예상과 같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제법 풍부한 편이라고 자부하는 영화 관람 경험이 꽤 날카롭게 작동해 정확도가 있다고 스스로 생각한다. 최근 수년 사이 영화 관람료가 많이 올라 돈 낭비를 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미리 영화 선정에 신중할 필요가 있다. 요즘엔 그런 경우가 잘 없지만, 꽤 오래전에는 영화가 상영 도중 끊기거나 예상보다 재미없는 데 실망해 야유가 터져 나오거나 '돈 내도~'하며 소리 지르는 관객들도 있었다.

'젠틀맨'을 살펴보니 연출에 김경원 감독, 출연진은 주지훈, 박성웅, 최성은 등이다. 영화 줄거리를 보면 의뢰받은 사건을 처리하는 흥신소 사장 지현수(주지훈)가 괴한의 습격을 받은 후 납치 사건의 용의자로 몰리고 교통사고를 당하면서 다시 검사로 오해받게 된다. 이에 지현수는 아예 검사인 척하며 자신이 용의자로 몰리고 있는 납치 사건을 수사하게 된다. 한편, 그 납치 사건을 수사하는, 좌천된 검사 김화진(최성은)은 '가짜 검사' 지현수와 만나게 되고 납치 사건이 자신을 물먹였던 부패검사 권도훈(박성웅)과 관련 있음을 눈치챈다. 결국, 누명을 벗으려는 지현수와 권도훈을 잡고 싶은 김화진은 탈·불법을 떠나 나쁜 놈 잡는 것이 먼저라며 손을 잡는데 전혀 예기치 못한 상황이 펼쳐진다.

영화 '젠틀맨'에서 박성웅은 부패한 검사 역할로 나온다.

줄거리는 그렇고 김경원 감독의 필모그래피를 살펴보니 2017년 3월에 개봉한 '아티스트:다시 태어나다', 2013년에 개봉한 '개구리 찾기' 등이 있다. '아티스트:다시 태어나다'는 배우 박정민과 류현경이 출연했으나 관객들은 철저히 외면했다. 예술의 본질에 고민하는 예술인들을 다룬 영화로 평은 나쁘지 않았으나 극장 안은 그지없이 썰렁했다. 이번 영화 '젠틀맨'은 좀 더 상업적인 소재로 줄거리도 재미있는 것으로 보이나 영화 완성도가 어떨지 모르겠다. 현재 관객이 압도적으로 몰리는 '아바타:물의 길', 큰 격차로 그 뒤를 잇는 '영웅'에 이어 약간의 예매율이 있으나 기대감은 별로 생겨나지 않는다. 한편으로, 최근 배우로서 주가가 올라가고 있는 주지훈이 시나리오를 고르는데 신중할 것으로 보이니 그다지 나쁘지 않을 것 같기도 하다. 오마이뉴스는 이 영화에 대한 기사에서 주지훈이 중심을 잡고 영화가 흡인력있게 전개해 나가도록 했다며 비교적 괜찮다는 평가를 내렸다. 오마이뉴스는 별 5개 만점에 3개를 줬다.

주지훈은 2018년에 개봉한 '암수살인'(김태균 감독)과 '공작'(윤종빈 감독)에서 좋은 연기를 보였다. 특히 사이코패스 살인마를 연기하는 '암수살인'의 강태오 역이 인상적이었다. 강태오를 추궁하는 형사 역의 김윤석은 원래 연기가 뛰어난 배우이니 제쳐두고 주지훈의 연기는 모델 출신의 연기자 라는 선입견을 깨게 할 정도로 강렬했다. 배우 입장에서 이처럼 센 역할을 주면 별 개성이 없는 역할보다 오히려 연기하기가 수월할 수도 있겠지만, 주지훈의 강태오 연기는 그 수준을 뛰어넘어 악랄한 인간 그 자체가 된 듯했다. '암수살인'과 '공작'은 넷플릭스에 있으며 다시 봐도 재미있을 작품들이다.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의 영화 '드라이브 마이 카'는 국내외 평론가들의 호평으로 주목받았다.

현재 개봉작 중에서 '드라이브 마이 카', '코르사주', '패르시아어 수업' '탄생' 등 관객이 외면해 안타까운 영화들도 있다. '드라이브 마이 카'는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의 일본 영화로 국내외 평론가들이 격찬하는 작품이다. 수준 높은 작품들을 놓치고 싶지 않은 관객 입장에서는 반드시 보아야 할 영화라고 할 수 있으나 극장 안은 썰렁하다. 이 영화의 줄거리를 보자. 연극 연출가인 주인공이 사이 좋았던 아내가 외도하는 것을 알게 된 후 아내가 갑작스럽게 죽게 된다. 연출가는 그 충격 속에서 연극제에 참가했다가 그의 전속 기사로 배정된 여성과 대화를 나누다 서로의 깊은 슬픔을 들여다보게 된다는 줄거리이다.

'코르사주'는 19세기 말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마지막 황후였던 엘리자베트 황후를 다룬 영화이다. 엘리자베트 황후는 황실이 요구하는 역할을 잘 해내야 하지만 차츰 그 규율과 의식이 답답하게 느껴져 자유로운 자신을 찾기 위한 여정에 나서게 된다. '페르시아어 수업'은 제2차 세계대전의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영화이다. 수감된 유대인이 특이하게 페르시아어를 배우려고 하는 독일군 장교에게 자신이 페르시아인이라고 거짓말을 하고 그에게 페르시아어를 가르치게 된다. 그러나 페르시아어를 알 리 없는 유대인 질은 긴장 속에서 거짓 페르시아 단어를 만들고 수업도 준비하지만 점차 독일군 장교 코흐의 의심을 받게 된다. '탄생'은 조선 최초의 가톨릭 사제인 김대건 신부의 젊은 시절을 그린 영화이다.

이 영화들이 나름의 장점을 지니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관객이 찾지 않는 이유를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드라이브 마이 카'는 탁월한 영화이지만 영화 흐름이 심심할 정도로 잔잔해서 그런 것이 아닐까? 뛰어난 일본 영화들을 보면 상황이나 인물에 대한 섬세한 묘사가 뛰어나지만, 스토리의 역동성이나 힘은 한국 영화에 비해 떨어진다고 할 수 있는데 한국 관객들이 그래서 찾지 않은 것 같다. '코르사주'는 엘리자베트 황후 이야기가 그다지 관심을 끌지 못했다고 봐야 한다. 엘리자베트 황후는 '시씨'라는 별칭으로 불리며 미모가 유럽 전역의 관심을 끌 정도로 화제가 되었고 지금도 오스트리아인들이 사랑하는 인물이지만, 한국 관객들에게는 낯선 존재이다. 오스트리아와 유럽에서 영화 등 많은 문화 상품의 소재가 되었지만, 관심이 별로 없는 한국의 벽을 뚫기는 어려웠던 것 같다. 넷플릭스에도 그녀를 소재로 한 '황후 엘리자베트'가 있지만, 인기 있는 작품은 아니다.

영화 '코르사주'에서 엘리자베트 황후 역을 맡은 비키 크립스

'페르시아어 수업' 역시 비슷한 경우라고 할 수 있다. 제2차 세계대전을 소재로 한 많은 영화들이 나왔고 지금도 나오고 있지만, 2차 세계대전이 이제는 지난 세기의 일이고 한국과도 관련성이 적다. 또 2차 세계대전의 실화를 소재로 한 이런 류의 영화들은 이미 많이 나와 관객들이 굳이 찾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이 영화는 흥미로운 영화일 것이라고 생각된다. 제2차 세계대전의 실화로 영화화 될 정도이면 그 사건은 매우 극적이기 마련이다. 살기 위해 독일군을 속여야 하고 들키면 끝장인 극한의 상황에서 벌어지는 사건은 비슷한 소재의 영화가 많았더라도 재미있을 수밖에 없다. 더구나 유대인 생존 과정을 다룬 이야기는 너무나 비극적이고 감동적인 사연들을 담고 있다. 이 영화가 베를린 영화제에서 상영된 후 관객들이 10분간 기립박수를 보냈다는 사실에서도 알 수 있다. '탄생'은 역사적 인물의 젊은 시절에 초점을 맞추었지만 종교적 배경이 한계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이런 영화들이 인기를 끌지 못한 것과 관련해 우리나라 관객들의 영화 취향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대체로 우리나라 관객들은 작품성이 뛰어나지만 잔잔한 영화를 좋아하지 않고 스토리가 극적이고 역동적인 영화를 좋아하는 것 같다. 유럽의 역사나 2차 세계대전 소재 영화는 자칫하면 외면당할 수 있으며 종교 관련 영화도 인기를 얻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누구보다 영화 제작자나 배급업자들이 이런 점들을 제대로 따지고 계산기도 두드릴 것이다. 그래도 대중의 취향에 영합하기보다 자신이 만들고 싶은 영화들을 꾸준히 만들어내는 수많은 영화 감독들이 있어서 이 세상의 영화판을 독창적으로 만들고 관객들은 풍부한 메뉴 중에서 선택할 수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