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1. 6. 00:00ㆍ영화 파노라마
로맨스 영화의 고전 '로미오와 줄리엣'의 남녀 주연 배우 올리비아 핫세(71)-'핫세'가 아니라 '허시'가 맞는 발음이라고 지적하지만 '핫세'로 굳어진 지 오래돼 이 표기를 그대로 사용함-와 레너드 위팅(72)이 최근 그 영화를 찍던 10대 시절에 속아서 촬영, 성추행 및 아동 착취를 당했다며 제작사 파라마운트를 상대로 6000억원대 규모의 소송을 제기했다. 이 뉴스에 세계적인 관심이 모이면서 우리나라에서도 관심이 뜨겁다.
이들은 자신들이 '로미오와 줄리엣'(1968년 개봉)을 촬영할 때 15세와 16세의 미성년이었으며 프랑코 제피렐리 감독이 출연 제의를 했을 당시 나체 장면 등이 없다고 설득해 출연했으나 실제로는 이와 달랐다고 밝혔다. 처음에는 침실 장면에 비치는 속옷을 입게 하더니, 나중에는 “이렇게 하지 않으면 영화가 망한다”며 강하게 압박했다고 덧붙였다. 이들은 “결국 베드신이 주연 배우들 모르게 나체로 촬영됐으며 이는 성추행과 아동 착취에 해당한다”며 파라마운트가 청소년의 나체 장면이 담긴 영화를 배급했다는 점도 지적했다.
이들이 55년 동안 별 움직임이 없다가 70세가 넘은 지금에야 소송을 제기한 것은 미국 캘리포니아주에서 아동 성범죄에 대한 공소시효를 한시적으로 없앤 법을 제정했기 때문이다. 2020년 법 개정에서 성인이 어린 시절에 겪은 성범죄에 대해 3년간 소송할 수 있도록 하면서 올리비아 핫세와 레너드 위팅도 로스앤젤레스(LA) 카운티 1심법원에 소장을 제출했다. 두 배우 측은 자신들이 너무 어려 제피렐리 감독에 기댈 수밖에 없었다며 지난 55년간 분노와 우울증에 시달려 왔으며 이 일 때문에 많은 취업 기회를 빼앗겼다고 주장했다.
이들의 말처럼 올리비아 핫세와 레너드 위팅은 '로미오와 줄리엣' 이후 이렇다 할 작품을 만나지 못했다. 올리비아 핫세는 간간이 영화에 출연했지만, 세간의 관심에서 멀어졌고 레너드 위팅은 핫세보다 더 못한 나날을 보내야 했다. '로미오와 줄리엣'은 30년 후에 개봉된 '타이타닉'처럼 너무 엄청난 인기를 얻었기 때문에 주연 배우들의 영화 필모그래피가 그렇게 쪼그라들 줄은 누구도 예상할 수 없었다. '타이타닉'의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케이트 윈슬렛이 화려한 연기 생활을 이어간 것에 비하면 달라도 너무 달랐다. 가수가 단 하나의 히트곡을 남기고 사그라든 '원 히트 원더'(One Hit Wonder)들은 적지 않지만 영화 배우가 단 하나의 출연작만 빅 히트를 기록한 경우는 잘 들어보지 못했다.
그래도 올리비아 핫세는 '로미오와 줄리엣', 단 하나의 영화로 영원한 사랑 이야기의 주인공으로 남았다. '로미오와 줄리엣'이 전세계적인 명성을 얻으며 불멸의 고전 같은 작품이 되었기 때문이다. '로미오와 줄리엣'은 이후에도 여러 차례 리메이크 되었지만 올리비아 핫세와 레너드 위팅이 출연했던 원작을 따라잡지 못했다. 올리비아 핫세가 나중에 발간한 자서전 제목 조차 '발코니의 그 소녀'(The Girl on the Balcony)였다.
올리비아 핫세에 대한 나무위키 자료를 보면 '로미오와 줄리엣' 출연 직후 그녀는 전세계적인 신드롬의 대상이 되었다. 그녀의 모국-올리비아 핫세는 스페인계 아르헨티나인 아버지와 영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인 영국에서 광기와 같은 열풍이 불었고 할리우드의 유명 배우들도 그녀를 보기 위해 영국을 방문했다. 일본, 한국 등 동아시아에서도 그녀의 인기가 하늘로 치솟았다.
그러나 예상 못한 큰 인기는 어린 나이의 그녀를 심하게 짓눌렀다. 영화 현장에서 프랑코 제피렐리 감독에게 성희롱성 발언을 들으며 상처를 받았던 올리비아 핫세는 유명세를 치르면서 일거수일투족이 언론에 노출되고 팬이나 사람들을 상대하며 엄청난 스트레스를 겪어야 했다. 그 와중에 메이저 영화사들의 영화 출연 제의를 잇따라 거절하면서 영화계의 중요한 인맥과도 차츰 멀어져갔다. 올리비아 핫세는 그나마 1972년 영화 '대부'에서 '아폴로니아 비텔리'역을 맡기로 돼 있었으나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은 시칠리아에서 만난 소녀 시모네타 스테파넬리로 배우를 교체해 그마저도 날라갔다. 올리비아 핫세는 이후 여러 작품에 등장했지만 프랑코 제피렐리 감독이 연출한 TV 미니시리즈 '나자렛 예수'의 성모 마리아 역과 2003년에 영화 '마더 데레사'의 데레사 수녀 역을 맡은 것을 제외하면 대부분 신통찮았다.
레너드 위팅은 더 옹색한 처지에 놓였다. '로미오와 줄리엣' 이후 배우 활동을 약간 더 이어갔으나 섭외의 손길이 끊기면서 은막을 떠나야 했다. 올리비아 핫세가 2017년 개봉작 '관종'(Social Suicide)에서 자신의 딸 인디라 아이슬리-올리비아 핫세는 세 번 결혼했다-의 엄마 역으로 출연하자 레너드 위팅은 남편이자 아버지 역을 맡아 오랫만에 스크린에 나타났다. 두 배우는 무려 47년 만에 감동적으로 만났고 이는 일종의 우정 출연이었다.
올리비아 핫세와 레너드 위팅의 소송에 관련된 프랑코 제피렐리 감독은 이미 2019년에 96세의 나이로 숨졌다. 제피렐리 감독은 '햄릿' '오델로' '말괄량이 길들이기' 등 주로 셰익스피어 작품들과 '토스카니니', '제인 에어' 등 오페라와 고전을 영화화했고 오페라 공연 등을 감독한 것으로 잘 알려졌다. 그는 좋은 영화들을 남긴 감독으로 평가받지만 사후에 불명예에 시달리게 됐다. 성범죄에 연루돼 불명예를 자초한 감독들의 사례는 이외에도 더 있다. '악마의 씨', '차이나타운', '피아니스트' 등 걸작들을 만든 로만 폴란스키 감독은 미국에서 미성년자 성폭행 범죄를 저지른 혐의로 재판 도중 프랑스로 도피해 비난을 받고 있다. 국내외에서 좋은 평가를 받던 우리나라의 김기덕 감독은 그의 페르소나인 배우 조재현과 함께 '미투'(MeToo)운동의 고발 대상자가 되었고 김 감독은 외국에 머물다 코로나19 바이러스에 감염돼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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