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1. 4. 00:00ㆍ영화 파노라마
호사가들이 입방아를 찧기 좋은 일들이 일어났다. 송중기가 주연을 맡은 '재벌집 막내아들'이 큰 인기-결말 부분에 대한 호오가 엇갈려 논란이 벌어지긴 했지만-리에 종영된 데 이어 그의 전 부인인 송혜교가 주연으로 나선 넷플릭스 드라마 '더 글로리'가 공개되자마자 큰 관심을 모으고 있다. 송중기는 또 공교롭게도 드라마와는 별개로 외국인 여자 친구가 있다는 사생활이 알려지면서 그녀가 영국 배우 누구이니 하면서 화제를 일으키고 있다. 송혜교는 묘한 타이밍에 자신의 주연작 드라마가 스트리밍되자 드라마 방영 전 하는 홍보 인터뷰를 하지 않았고 다른 출연 배우들의 인터뷰도 취소돼 뒷말을 낳았다. 대형 스타들은 결혼해도 엄청난 주목을 받지만 헤어지더라도 뜻하지 않게 엮이니 이래저래 참 불편하다.
'더 글로리'는 학교 폭력에 시달리던 한 여성이 성장해 자신을 괴롭히던 가해자들을 응징하는 차갑고 핏빛 어린 복수극이다. 송혜교 주연에다 '미스터 션사인', '도깨비', '태양의 후예' 등 화제의 드라마를 생산한 김은숙 작가가 각본을 쓰고 '비밀의 숲', '해피니스' 등을 연출한 안길호 PD가 참여해 공개 전부터 주목을 받았다. 지난달 30일 스트리밍되자마자 이틀 만에 넷플릭스 국내 시청 1위, TV 프로그램 부문 세계 5위에 올라서는 등 화제를 모으고 있다.
문동은(정지소·송혜교)은 박연진(신예은·임지연) 일당에게 학창 시절 극심한 학교 폭력을 당한다. 얻어맞는 것은 기본이고 연진이 고데기의 열로 팔뚝의 맨살을 지지는 등 참혹한 피해를 겪는다. 육체적으로도 힘들지만 정신적으로 무너질대로 무너져 자살할 생각에 건물 옥상끝에 섰다가 내려오기도 했다. 연진과 그의 무리인 전재준(박성훈), 이사라(김히어라), 최혜정(차주영), 손명오(김건우) 등은 동은이 주눅 들고 힘들어하자 더 즐거워하며 괴롭힘을 이어간다.
동은은 가난하고 무관심한 어머니 밑에서 학교 폭력에 무자비하게 노출되고 방치된다. 학교에 폭력 피해 사실을 알리기도 해보지만, 학교측은 동은을 꼬드겨 넘어가려 하고 연진의 어머니가 동은의 어머니에게 돈을 줘 없던 일로 한다. 동은의 담임 교사 김종문(박윤희)도 부유한 연진 편에서 동은이를 내팽개친다. 연진 무리 중 연진과 재준은 부유한 집 아이들이며 사라는 상류층 인사들이 다니는 대형 교회 목사의 딸이다. 혜정과 명오는 그들을 따라다닌다.
동은은 결국 이들의 폭력을 견디지 못하고 학교를 자퇴한다. 연진 무리는 동은 이전에 윤소희(이소이)를 상습 폭행했고 동은이 자퇴하자 또다른 타깃을 김경란(안소요)으로 정해 그녀를 괴롭힌다. 소희는 학교 폭력을 견디지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전해졌다. 동은이 자퇴하는 날, 담임 교사 종문에게 그간 쌓인 말들을 터뜨리자 종문은 화를 참지 못하고 교무실에서 동은을 마구 두드려팬다.
<이 부분부터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동은은 학교를 나온 후 공장에서 일하며 검정고시로 대입 자격을 따내고 대학에도 입학한다. 대학생 신분으로 불법 과외도 해가면서 악착같이 돈을 모은다. 동은은 한시라도 잊을 수 없었던 연진 패거리를 향한 복수를 위해 그렇게 자금을 마련하고 치밀한 계획을 세운다. 그런 와중에 다쳐서 입원하게 된 병원에서 의사 주여정(이도훈)을 만나게 되고 여정은 동은에게 사랑을 느끼게 된다. 연진 패거리는 어떻게 되었을까? 남자관계가 복잡했던 연진은 부유한 집안의 사업가 하도영(정영일)과 결혼해 딸 하예솔을 낳는다. 전재준은 아버지가 경영하던 골프장을 물려받고 최혜정은 승무원이 된다. 손명오는 재준의 수하로 일하며 김경란은 재준의 편집샵 점원이 된다.
동은은 연진 일당을 향한 복수를 위해 꼼꼼하게 준비한다. 그녀는 남편의 상습 폭력에 시달리고 있는 강현남(염혜란)을 알게 되고 그들은 일종의 피해자 연대로 결속한다. 현남은 동은의 복수를 위해 그녀가 필요한 정보들을 모아주기로 하고 동은은 현남이 더 이상 맞지 않게 해주겠다고 약속한다. 그 뒤 동은은 교원 임용시험에 합격해 교사가 되고 현남의 정보를 이용, 연진의 딸 하예솔이 다니고 있는 세명시의 사립초등학교 교사가 되어 예솔의 담임을 맡게 된다. 또 재준의 뒤치다거리를 하는 명오를 같은 편으로 끌어들여 정보를 전달받는다. 동은은 수집한 정보를 바탕으로 연진과 재준, 혜정의 약점을 잡고 이들을 압박한다. 연진 일당은 동은이 그들의 주변에서 움직이는 것을 알고 놀라게 되고 특히 연진은 분노에 치를 떤다.
'더 글로리'는 지금 방영되는 '파트 1-8부작'에 이어 3월 중에 '파트 2-8부작'을 출시한다. 이번 '파트 1-8부작'은 동은의 복수가 일부 진행되지만, 주 목표인 연진을 향한 복수의 빌드업이 주 내용이다. 본격적이고 통쾌한 복수극은 '파트 2'에서나 볼 수 있다. 그래서 아직은 밋밋한 느낌도 들고 복수극으로 가는 듯하다 동은과 여정의 로맨스 분위기가 깔리는 등 초점이 왔다갔다 한다. 그러나 '파트 2'의 클라이막스를 향해 달릴 복선과 구도는 충분히 깔리게 된다. 연진의 치명적인 약점이 드러나며 이를 아는 동은이 어떻게 활용할지 관심을 모으게 하고 연진의 남편 하도영과 동은의 만남이 어떤 변수로 작용할지도 궁금하게 만든다. 여정이 동은을 향한 사랑을 지닌 순수한 청년인 줄로만 알았는데 남모를 비밀과 숨겨진 일면을 지닌 인물임을 암시하는 것도 '파트 2'를 기대하게 하는 부분이다.
복수극을 내세운 '더 글로리'는 박찬욱 감독의 유명한 복수 3부작 중 '친절한 금자씨'와 비슷한 구석이 있다. 박찬욱 감독의 복수 3부작은 2002년 '복수는 나의 것', 2003년 '올드보이', 2005년 '친절한 금자씨'로 이어지는데 '더 글로리'와 '친절한 금자씨'는 여성이 복수의 주체이고 여성 피해자 연대를 통한 복수 라는 점에서 닮아있다. '친절한 금자씨'의 이영애와 '더 글로리'의 송혜교가 냉정한 감정을 유지하는 표정과 자세로 서늘한 복수에 나선다는 점도 비슷하다. 다만, 송혜교가 처연한 분위기를 띠고 있다면 이영애는 차가우면서도 자신만만한 면이 있어 미세한 차이도 느껴진다.
그러나 '친절한 금자씨'가 남성 폭력에 대한 여성의 복수라면 '더 글로리'는 한 발 더 나아가 학교 폭력에 대한 피해자의 복수, 혹은 부유층의 폭력에 대한 하층 계급의 복수 라는 차이를 나타낸다. 또 '친절한 금자씨'가 잔혹하면서도 격조 있는 복수극이라면 '더 글로리'는 막장 드라마 같은 느낌이 있다. 김은숙 작가가 의도적으로 그렇게 만든 것처럼 느껴진다. 드라마 속 상류층 등장 인물들의 무절제하고 방탕한 생활, 거기에서 파생되는 사생활의 비밀, 거친 언사와 폭력 등은 꽤 자극적이어서 막장 드라마적 요소가 짙은 편이다.
'막장 드라마' 라는 말에는 작품을 깎아내리는 의도가 깔려 있지만, 꼭 그렇게 볼 것은 아니다. '막장 드라마'는 어느덧 한국 드라마가 가진 하나의 특성이 되어 외국에서도 두터운 팬층이 형성된 'K-콘텐츠'로 볼 수 있다. 드라마 애호층이 넓은 한국에서 시청자들의 기호를 최대한 만족시키려고 더 흥미롭게 만들려고 노력하다가 나온 독특한 드라마 형식이 아닌가 한다. 복수의 빌드업을 끌어올린 '더 글로리'가 3월의 '파트 2'에서 축구 경기장 파이널 서드에서 날리는 공격수의 슛처럼 복수극의 통쾌한 결정력을 보여줄지 기대해 보자.
사족-'더 글로리' 초반부의 학교 폭력 장면은 잔혹하기 이를 데 없다. 고데기의 열로 팔의 맨살을 지지다니 이게 학교 폭력의 실상이라고 믿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드라마 집필진이 학교 폭력의 구체적 사례들을 조사해 쓴 것일테니 상상의 산물만은 아닐 것이다. 드라마이든 실제 현실이든 가해 학생들은 어린 나이에 어떻게 그러한 괴물이 된 것인가, 아니면 그 부모들은 도대체 어떤 인간들인지 질문하고 싶다. 우리 사회의 한 구석이 심하게 병든 것이 확실해 보여 씁쓸하기 그지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