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자경·견자단의 변함 없는 무협의 세계-넷플릭스 영화 '와호장룡:운명의 검'

2023. 1. 28. 00:00영화 파노라마

 

'와호장룡-운명의 검'의 한 장면.

최근에 양자경(량쯔충)이 올해 아카데미 영화제 시상식의 최다 부문 후보로 오른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로 여우주연상 후보로 오른 것을 보니 옛 기억이 많이 떠올랐다. 양자경은 2000년대 이후에는 다양한 작품들에 출연했지만, 20대인 1980년대의 '예스 마담' 시리즈와 30대인 1990년대의 '신유성호접검', '동방삼협', '태극권' 등 홍콩 무협 영화의 주인공으로 많은 인기를 얻었다. 지금은 무협영화를 극장에서 보기도 힘들고 인기도 많이 사그라들었지만 한때는 무척 인기 많은 장르였다.

양자경이 무협 영화의 주인공에서 다양한 드라마 장르의 배우로 진화했다면 견자단(전쯔단)은 무협 영화에 진심인 배우라고 할 수 있다. 양자경보다 한 살 적은 견자단은 올해 환갑을 맞았는데 여전히 고난도 무협 액션을 소화하는 열정을 지니고 있다. 그는 1980년대와 1990년대부터 '신용문객잔', '엽문'시리즈, '도화선', '상하이 나이츠' 등 고대 배경의 무협 영화와 현대 무협액션 영화에 꾸준히 출연해왔다. 이렇듯 견자단의 무협영화 이력은 그를 이소룡, 성룡, 이연걸 등의 뒤를 잇는 무협영화 스타 계보에 이름을 올리게 했다. 1월25일에는 그가 감독과 주연을 맡은 '천룡팔부-교봉전'이 개봉해 오랫만에 무협영화 팬들을 설레게 하고 있다. 

양자경과 견자단이 호흡을 맞춘 영화가 몇 편 있는데 가장 최근이라 할 수 있는 2016년 작품 '와호장룡-운명의 검'이 눈에 띈다. 이안 감독의 2000년 개봉작 '와호장룡'의 속편 격이라 할 수 있는 영화로 양자경은 '와호장룡'에서도 주윤발, 장쯔이, 장첸 등과 같이 연기를 펼쳤다. '와호장룡-운명의 검'은 넷플릭스 영화로 영어 대사로 전개되며 중화권과 동아시아의 무협영화 팬들을 겨냥한 듯한 영화였으나 큰 호응을 받지는 못했던 것 같다. 그러나 아름답고 우아한 무협 액션의 진수를 펼친 '와호장룡' 못지 않게 무협 액션이 화려하며 무협의 세계관에 기반한 줄거리가 탄탄한 수작으로 평가할 수 있다. '와호장룡-운명의 검'은 '와호장룡'의 이모백(주윤발)이 세상을 떠난 이후의 이야기를 다룬다.

 

이모백이 세상을 등진 후 무당파의 보검인 청명검을 보관하던 철왕야도 유명을 달리한다. 그러자 서련당을 이끄는 대명계(제이슨 스콧 리)는 위방(해리 슘 주니어)을 보내 청명보검을 빼앗아오도록 지시한다. 철왕야의 부고를 듣고 그의 집으로 향하던 유수련(양자경)은 서련당의 기습을 받지만, 복면 무사의 도움으로 곤경에서 빠져나간다. 유수련은 철왕야의 집에 도착한 후 청명보검을 탈취하러 온 위방을 제압해 그를 철감옥에 가둔다. 유수련은 대명계와 서련당의 침입에 대비해 호위군사들을 늘리고 협객들의 도움을 널리 구한다. 이에 다섯 명의 협객이 부름에 응하는데 그 중에는 유수련을 도왔던 '고요한 늑대'도 있으며 그는 유수련의 옛 정인이었던 맹사소(견자단)였다. 거기에 정체를 알 수 없는 여인 설병(나타샤 리우 보르디조)도 철왕야의 집으로 온다.

설병에게는 숨은 사연이 있다. 돌아가신 스승 한매로부터 그녀의 아들 위방을 돕거나 그가 악에 빠졌다면 차라리 죽여버리라는 유언을 듣고 이를 지키려고 그 곳에 왔던 것이다. 위방 역시 대명계의 충직한 부하가 아니라 스승이 따로 있으며 청명보검을 구해 대명계에게 전해야 자신과 스승의 목숨을 부지할 수 있다. 또 맹사소와 함께 온 협객들은 청명검을 손에 넣어 강호를 제패하려는 대명계와 서련당에 맞서 강호의 대의를 지키려고 한다. 유수련은 제자 되기를 청하는 설병의 무예를 가다듬으면서 일전을 대비한다. 유수련과 맹사소, 설병과 위방, 그들을 도우려는 협객들, 그리고 이들을 노리는 대명계와 서련당 고수들의 일전이 차츰 다가온다.

 

이안 감독이 '와호장룡'에 예술성을 불어넣었다면 '와호장룡-운명의 검'은 무협 영화의 본질에 충실하다. '와호장룡-운명의 검'을 연출한 원화평 감독이 수많은 무협 영화의 감독과 무술감독, 배우로 일하며 '무협영화의 산 역사'라고 할 수 있는 인물임을 고려한다면 그의 영화가 어떠할지 짐작할 수 있다. 올해 78세인 그는 올 1월에 개봉한 '견자단의 용호무사'라는 작품에서도 '추억의 스타' 홍금보와 함께 주연을 맡았을 정도로 에너지가 넘친다. 그는 1979년 성룡의 슈퍼 히트작인 '취권'과 '사형도수'를 연출했고 쿠엔틴 타라티노 감독의 '킬 빌'의 무술감독을 맡기도 했다. 특히 '취권'에서는 그의 아버지 원소전이 성룡의 사부로 출연, 코믹 무협 영화로 공전의 대히트를 기록했다.

중국이 본산이고 한국의 열성도 대단했던 '무협 영화'는 미국의 '서부 영화'처럼 하나의 원형질을 갖고 있는 특별한 장르라고 할 수 있다. '무협 영화'는 대개 부모나 사부를 죽인 원수를 갚거나 강호를 장악하기 위해 대결하거나 보검이나 무술의 비급을 차지하기 위해 서로 죽고 죽이는 식의 줄거리를 가지며 권선징악으로 끝난다. 이처럼 스토리가 정형화돼 있어 작품성을 따지기 보다는 화려한 무술의 향연을 즐기는 영화라고 할 수 있다. 기기묘묘한 동작으로, 때로 공중을 날아다니며 각종 무기를 뛰어나게 다루면서 아름다운 선을 그리듯 대결하는 장면은 눈을 홀리게 하고 입을 다물지 못하게 만든다. 그래서 볼 때에는 빠져들지만, 극장을 나서면 영화의 하이라이트인 무술 액션이 잘 떠오르지 않기도 한다.

그럼에도 무협 영화는 영화사의 한 자리를 확실히 차지하고 있다. 1970년대와 80년대에 수많은 홍콩 무협 영화들이 양산됐고 발전했고 서구의 액션 영화에도 적지않은 영향을 미쳤다. 이소룡은 동아시아권을 넘어 할리우드에서도 탐을 내던 슈퍼 스타였고 성룡, 이연걸 등의 명성도 전 세계에 도달했다. 우리나라에도 외팔이 시리즈 등 많은 무협 영화들이 만들어져 관객들이 좋아했다. 특히 미국의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은 한국과 중국의 무협영화에 푹 빠졌던 인물로 그의 작품 '킬빌'은 무협영화에 헌사를 바치는 영화라고 할 수 있다.

40~50여년 전 무협영화가 성행했을 당시의 많은 어린 아이들이 이소룡이나 성룡의 무술 동작을 따라하며 흉내를 내곤 했다. 오늘날에 이르러 무협 영화의 인기가 예전 같지 않은 것이 '뻔한 스토리'와 무술 액션의 지나친 과장 등이 원인일 수 있겠으나, 그래도 아름답고 화려한 무술 액션의 매력은 여전하다. 현재 상영 중인 견자단의 '천룡팔부:교봉전'은 그래서 극장으로 달려가 보고 싶은 영화이니 서둘러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