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5. 23. 12:49ㆍ영화 파노라마
현대 축구의 위대한 명장 알렉스 퍼거슨 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감독이 그의 자서전에서 역사에 관심이 많으며 특히 존 F. 케네디 전 미국 대통령의 암살 사건에 흥미를 느낀다고 한 내용을 읽은 기억이 난다. 스코틀랜드 출신의 영국 축구 감독이 과거 미국 대통령의 암살 사건에 관심을 보인다는 것이 낯설었지만, 바로 이해했다. 케네디 대통령 암살은 현대사의 비극이면서 복잡다단하고 미스테리한 사건이기 때문이다. 축구 감독이든 학생이든 회사원이든 주부이든 역사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면 무시할 수 없는 사건이라고 생각한다.
올리버 스톤 감독은 지금으로부터 30여 년전인 1991년에 케네디 대통령 암살 사건을 다룬 'JFK'를 내놓았다. 이 사건은 리 하비 오스왈드 라는 인물을 진범으로 지목했지만, 그는 체포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잭 루비 라는 인물에게 총격 살해당했고 당시 사건 전후의 여러 복잡한 정황들을 살펴보면 수긍할 수 없는 점들이 많다. 이때문에 음모론들이 난무했고 실체적 진실은 아직 드러나지 않았다. 'JFK'는 이 사건을 끈질기게 추적했던 짐 개리슨 이라는 인물의 관점을 따르되 제기되었던 여러 상황들을 한데 모았다. 그래서 이 영화의 상영 시간은 무려 3시간을 넘는다. 디즈니플러스에서 볼 수 있으며 취향에 따라 다를수 있지만 긴 시간임에도 빠져드는 영화라고 할 수 있다.
1963년 11월22일, 댈러스를 방문 중이던 케네디 대통령이 차를 타고 이동하다 총격을 받고 숨진다. TV 뉴스를 접한 시민들은 충격과 비탄에 잠긴다. 남부의 일부 반대파 시민들은 그의 죽음을 좋아하기도 한다. 곧 리 하비 오스왈드(게리 올드만)가 유력한 용의자로 검거되고 진범처럼 굳어가지만 며칠 후 잭 루비가 경찰에 의해 호송되던 오스왈드를 총으로 쏴 살해한다. 뉴올리언즈 지방검사 짐 개리슨(케빈 코스트너)은 이러한 상황들을 지켜보며 뭔가 개운치 않음을 느끼지만, 자신이 관여할 수 있는 사건이 아니다.
이후 3년의 시간이 지났다. 케네디 암살 사건은 사건 수사결과 보고서인 워런 보고서를 통해 오스왈드를 범인으로 지목하고 마무리됐다. 그러나 개리슨은 여전히 이 사건에 관한 꿈을 꾸는 등 사건을 제대로 파헤치고픈 욕구를 참을 수 없다. 개리슨은 수사팀 부하 직원들과 함께 댈러스의 사건 현장과 관련된 장소, 인물들을 찾아다니며 사건을 재구성해본다. 2.6초 사이에 이뤄진 세 발의 총격, 목격자들의 증언, 우산을 든 남자, 화약 검사, 사진 속의 잘못된 그림자, 재프루더 필름(에이브러햄 재프루더 라는 시민이 케네디 피격 순간을 촬영한 필름), 쿠바 이민자들의 반 카스트로 활동, 오스왈드의 수상한 행적과 친 카스트로 활동 등을 찬찬히 되짚어본다.
개리슨이 사건을 점점 더 깊이 파고들자 그의 부인(시시 스페이식)은 가정에서 아이들과 같이 보내는 시간을 중요히 하지 않는다며 불만을 터트리고 부부 사이는 서먹해진다. 개리슨의 팀원들도 지쳐가면서 서로 의견들이 부딪히고 일부는 개리슨 곁을 떠난다. 개리슨은 이러한 상황에 힘들어 하면서도 케네디 암살의 배후에 거대한 조직이 또아리를 틀고 있음을 느낀다. 케네디 대통령은 생전에 쿠바 침공 계획을 중지하고 소련과 일촉즉발의 대결 국면에 있다가 화해 모드로 돌아섰으며 결정적으로 베트남 전쟁에서 철군할 계획까지 갖고 있었다.
개리슨은 케네디의 이러한 행보가 무기제조업체들과 보수적인 관료들의 불만을 샀고 결국 그의 죽음에는 CIA와 FBI 등 정부 내 기득권 세력이 개입했다고 판단한다. 특히 개리슨은 정보 장교로 많은 기밀을 알고 있는 '미스터 X'(도널드 서덜랜드)가 건네준 정보를 듣고 그같은 판단을 더욱 굳힌다. 개리슨은 마침내 평판 좋은 사업가이지만 미심쩍은 행적이 많은 클레이 쇼(토미 리 존스) 라는 사업가가 암살 사건에 관련있다고 보고 그를 기소한다. 개리슨이 케네디 암살 사건에 대해 처음으로 클레이 쇼를 기소함으로써 미국 내 관심이 커지고 거센 파장이 일어난다.
'JFK'는 올리버 스톤 감독이 심혈을 기울여 만든 작품이다. 올리버 스톤은 베트남전 소재의 걸작 '플래툰'으로 아카데미작품상과 감독상 등을 받은 명감독이지만, 작품의 편차가 적지 않은 편이다. 'JFK'는 '플래툰' 이후에 나온 작품으로 의심의 여지없이 올리버 스톤의 '명작'군에 들어간다. 올리버 스톤의 영화에는 강렬한 에너지가 뿜어나오는 특징이 있는데 조화를 잘 이루면 명작으로, 그렇지 못하면 범작에 머물고 만다. 'JFK'는 당시의 기록 필름, 암살 사건이 일어난 장소와 주위에 풀이 난 언덕 등 모든 것을 집대성해 영화를 만들었고 조 페치, 잭 레몬, 존 캔디, 도널드 서덜랜드, 케빈 베이컨, 빈센트 도노프리오 등 명배우들을 모아 역사의 현장을 재현했다.
미국의 영화평론가 고(故) 로저 에버트는 자신이 선정한 위대한 영화 목록에 '플래툰' 대신 'JFK'를 넣으면서 이 작품에 대한 애정과 호평을 보냈다. 사실, 영화가 나올 당시 미국의 유명한 앵커 월터 크롱카이트가 'JFK'에 대해 사실관계에 들어맞지 않는다고 혹평했다. 에버트는 크롱카이트의 견해를 받아들이면서도 'JFK'가 사실관계를 제대로 다루는지와 별개로 케네디 암살사건에 대한 미국 사회의 정서를 훌륭히 담아냈기 때문에 뛰어난 작품이라고 평한다. 그의 말에 공감한다.
'JFK'는 긴 상영시간 동안 케네디 암살사건에 대한 수많은 증거들과 인물들의 이야기를 다루며 매우 복잡하고 혼란스럽다는 느낌을 준다. 한편으로, 대통령의 암살에 대한 미국인들의 슬픔과 충격, 대통령에 대한 반감, 사건의 배후를 밝혀내려는 인물들의 집요한 수사 등을 담아내며 당시 미국 사회의 정서와 분위기를 표현한다. 올리버 스톤 감독이 'JFK'를 통해 담아내는 정서와 분위기는 어둡고 강렬하다. 그의 다른 작품들에서도 느낄 수 있는 그만의 색깔로 자신만의 색깔을 가졌다는 점에서 올리버 스톤은 인상적인 감독이다. 'JFK'는 올리버 스톤이 자신의 작품들 중 가장 좋아하는 작품이기도 하다.
사족-'JFK'의 짐 개리슨 역을 맡은 케빈 코스트너는 더없이 어울린다. 신뢰감을 주는 잘 생긴 외모가 그같은 역할에 잘 들어맞고 그가 맡은 주인공에 대해 관객들이 안정감을 느끼게 되는 것 같다. 케빈 코스트너가 맡은 금주법 시대의 암흑가 두목 알 카포네를 뒤쫓는 '언터처블'의 엘리엇 네스 역, '하이웨이 맨'에서 유명한 강도 일당인 보니와 클라이드를 추격하는 프랜시스 오거스터스 해머 역도 그에게 안성맞춤인 역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