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수채화 같은 '코다', 현실의 어려움은 외면하다(ft. 넷플릭스, 에밀리아 존스, 트로이 코처, 퍼디아 윌시-필로)

2023. 4. 23. 23:54영화 파노라마

 

영화 '코다'에서 농아인 가족의 유일한 비장애인인 루비 로시(에밀리아 존스)는 학교 다니는 틈틈이 아버지와 오빠의 어업 일을 돕는다.

아카데미 작품상과 남우 조연상, 각색상을 받은 '코다'(Coda)는 마음이 따뜻해지는 좋은 영화이다. 이 영화에 쏟아진 찬사들만 봐도 알 수 있다. '상상 그 이상, 최고의 음악 영화!', '별처럼 반짝이는 청춘을 머금은 노래', '들리는 세계와 보이는 세계, 그 경계의 아름다운 이야기' 등 멋진 표현들이 이 영화를 좋게 평가한다. 충분히 고개가 끄덕여진다. 농아인 부모와 농아인 오빠가 있는 가정의 아름다운 소녀 루비 로시(에밀리아 존스)의 성장 영화이자 가족 영화이자 음악 영화로 호감을 느끼며 화면을 바라볼 수 있다.

그러나, 바로 그 점이야말로 이 영화의 아쉬움이라고 느껴진다. 영화를 보면서 좋은 기분을 느낄 수 있지만, 뭔가 부족한 느낌이 드는 것도 어쩔 수 없었다. 루비가 처한 환경은 상당히 열악한데 영화에서는 그러한 현실감이 별로 느껴지지 않는다. 그래서 '코다'는 아름다운 수채화 같은 영화이지만 세상의 얼룩은 지워버리고 그저 예쁘게 그린 그림 같다. 별 5개 만점에 3개 정도의 영화인데 아카데미 작품상을 받았다는 점에서 조금 의외이기도 하다. 하지만, 놀랄 일도 아니다. 아카데미 작품상 수상작들이 모두 최고로 좋다고 할 수는 없으니까. 아카데미 역대 수상작들은 작품 완성도에 따라서 다시 상, 중, 하로 나눌 수 있는데 '코다'가 상이 아닌 것은 분명하며 중이라고 평가하기도 어려울 것 같다.

 

학교 친구들에게 놀림을 당하고 가족에 매인 생활이 답답한 루비는 학교 합창단에 들어가 음악 교사 '미스터 V'(에우헤니오 데르베스)의 지도를 받는다.

고등학교 졸업반인 루비는 아버지 프랭크 로시(트로이 코처)와 어머니 재키 로시(말리 매틀린), 오빠 레오 로시(다니엘 듀런트)가 모두 농아인인 가정에서 유일하게 듣고 말할 수 있는 코다(Coda:Children of deaf adult)이다. 루비는 학교 다니는 틈틈이 아버지와 오빠가 배를 타고 생선 잡는 일을 같이 하며 경매 현장에도 따라가서 의사 소통을 도와야 한다. 학교에 가서는 생선 냄새가 난다며 다른 아이들로부터 무시 당하고 따돌림을 당하기도 하지만, 그녀에게는 단짝 친구인 거티(에이미 포사이스)가 붙어 다닌다.

루비는 이처럼 여러모로 크고작은 상처를 받지만, 씩씩한 면이 있다. 또 가족들은 서로 사랑하지만, 루비는 가족에게 매인 생활이 답답하기만 하다. 루비는 어느 날 답답함에서 벗어나고자 자신이 좋아하는 노래를 부르기 위해 학교 합창단에 들어간다. 일명 '미스터 V'로 불리는 음악 교사 베르나르도 빌라로보스(에우헤니오 데르베스)는 루비의 노래에 귀를 기울이며 그녀에게 노래 잘 부르는 남학생 마일스(퍼디아 윌시-필로)와 듀엣곡도 같이 연습하라고 한다.

루비의 아버지 프랭크(트로이 코처)와 오빠 레오(다니엘 듀런트)는 경매상과 충돌한 뒤 생선판매조합을 따로 차리며 독립한다.

루비의 아버지 프랭크와 오빠 레오는 경매장에서 다른 어민들보다 낮은 가격에 생선을 넘기다 루비로부터 무시 당하지 말라는 말을 듣곤 한다. 경매인들은 어느 날 정부가 세금을 올렸다며 이를 어민들에게 떠넘기려 하자 프랭크는 루비의 통역으로 화를 낸 뒤 경매인들과 거래를 끊겠다고 말한다. 프랭크는 가족의 도움으로 자신을 따르는 어민들을 모아 조합을 차리고 직접 생선 판매에 나선다.

루비는 호감을 갖고 있는 마일스와 같이 노래 연습을 하며 빌라로보스 선생님으로부터 버클리 음대에 지원해보라는 조언을 듣는다. 루비는 버클리 음대에 가고 싶지만, 어머니 재키는 네가 없으면 가족 사업을 할 수 없다며 반대한다. 가족과 갈등을 빚게 된 루비는 아버지와 오빠의 조업에 따라가지 않았고 그녀가 없어 소리를 듣지 못하는 상태에서 아버지와 오빠는 경비선의 단속에 걸린다. 자신의 길을 가기 위해 대학에 진학하느냐, 아니면 가족을 돕기 위해 남아야 하느냐를 놓고 루비의 머리 속이 복잡해진다.

 

이 영화에서 루비와 루비의 가족은 몇 차례 위기와 갈등을 겪게 된다. 아버지와 오빠가 경매상과 거래를 중단하고 직접 생선 판매에 나서는 상황, 버클리 음대 진학을 탐탁치 않아 하는 어머니와 루비의 충돌, 경비선의 단속에 걸려 어업 정지를 당해 생계가 곤란해진 상황이 그것이다. 연습 시간에 늦지 말 것을 엄격하게 따지는 미스터 V와 가족을 도와야 하기 때문에 연습 시간을 맞추기 어려운 루비의 입장이 갈등을 빚는 상황도 있다.

루비는 미스터 V로부터 버클리 음대 진학을 권유받고 자신이 호감을 느끼는 마일스(퍼디아 윌시-필로)와 듀엣곡도 연습하게 된다.

그러나 이 위기와 갈등은 별 어려움없이 풀려버린다. 프랭크와 레오가 따로 나와 생선판매 조합을 만들어 별 어려움 없이 순조롭게 헤쳐 나가고 대학 진학에 반대하는 어머니도 슬그머니 입장을 바꾼다. 조업 정지를 당하지만 사는 데에도 큰 어려움은 없어 보인다. 이러한 문제들이 현실감있게 다뤄지려면 영화 속 주인공들은 더 어려운 길을 가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 그러한 문제들보다 '코다'에서 시종일관 강조되는 것은 가족애이다. 친구들에 놀림을 당하는 루비의 성장통도 가볍게 지나가고 음악을 진지하게 대하는 듯 하다가도 음악은 루비의 삶에 중요하지 않게 보이기도 한다. 이것저것 약간씩 다루지만 영화의 방점은 '가족 간 사랑'에 놓여 있다. 루비의 성장통이나 가족의 어려움이 좀 더 진중하게 다뤄졌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아 무게감이 떨어진다.

'코다'는 약간 도식적이며 확실한 초점을 모으지 못했다는 점에서 더 좋은 영화가 될 기회를 놓쳐 버렸다는 느낌이 든다. 그래도 '코다'가 아름다운 감정을 자아내기 때문에 좋은 영화인 것은 분명하다. 루비와 그녀의 가족들이 수화로 의사소통하면서 화면에서 소리가 나지 않고 그들의 동작만 보일 때 관객은 들리지 않는 세계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떠올리게 된다. 모든 사람들이 더불어 살아가기 위해 장애인을 포함한 다른 사람들을 이해해야 한다는 미덕을 보여주는 것이 이 영화의 돋보이는 점이기도 하다.

루비는 버클리 음대에 진학하느냐, 아니면 가족 곁에 남느냐를 놓고 고민이 깊어진다.

결정적으로 훌륭한 음악들이 이 영화를 반짝이게 한다. 도식적인 흐름 속에서 좋은 음악으로 기억되는 '싱 스트리트'나 '댓 씽 유 두' 같은 영화들처럼 '코다'도 그러한 영화이며 더 좋다고 말할 수 있다. 특히 루비 역의 에밀리아 존스가 부르는 '보쓰 사이즈 나우'(Both Sides Now)는 천상의 천사가 부르는 듯 아름답기 그지없다. 원곡 가수 조니 미첼과 주디 콜린스가 불러 유명해졌고 다른 많은 가수들이 부른 '보쓰 사이즈 나우'는 자연 속 구름의 양면성과 삶과 사랑의 오묘함을 빗댄 아름다운 가사로 잘 알려졌다. 에밀리아 존스는 영화 말미에 버클리 음대 면접장에서 이 노래를 부르며 가족들에게 수화로 가사를 전하는데 주디 콜린스보다 더 맑고 깊은 목소리로 심금을 울린다.

'코다'로 주목받은 션 헤이더 감독은 여성 연출자이면서 배우로도 일하고 있다. 그녀는 넷플릭스 영화 '탈룰라'도 연출했으며 '코다' 역시 넷플릭스에서 볼 수 있다. 마일스 역의 퍼디아 윌시-필로는 '싱 스트리트'에도 출연했던 배우이다. 아버지 프랭크 역의 트로이 코처는 아카데미 남우 조연상을 받을 때 윤여정 배우에게서 트로피를 수상했는데 그의 연기도 멋지지만, 개인적으로는 미스터 V 역의 에우헤니오 데르베스의 연기가 더 탁월했다. 그는 활기차고 열정적인 음악 교사 역할을 훌륭하게 소화하는데 영화 중반부까지 화면에 자주 나오다가 영화 흐름이 음악 중심에서 가족 중심으로 바뀌면서 영화 말미에 얼굴을 다시 비치는 정도에 머물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