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개봉 50주년 맞은 '대부', 장엄한 스타일과 잊지 못할 캐릭터의 걸작(넷플릭스, ft.말론 브란도, 알 파치노, 제임스 칸, 로버트 듀발,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을 하겠네"
이 유명한 대사의 영화 '대부'를 이야기하는 것은 '영화의 왕'에 고개를 조아리듯 긴장되면서도 설레는 일이다. 한편으로는 진부하고 쓸 데 없는 행위라는 생각도 든다. 이 위대한 영화에 대해서, 영화중의 영화에 대해서, 그래서 너무나 잘 알려진 영화에 대해서 무슨 말을 더 할 수 있을까? 그러나 50년이 지나도 생생하게 잊혀지지 않는 이 영화는 오늘날에도 영화 팬들이 입에 침을 튕기며 한마디 말이라도 더 보태고 싶은 충동을 일으키게 한다. 윌리엄 와일러 감독이 1959년 개봉한 영화 '벤허'를 만들고 난 뒤 "신이여, 정녕 이 영화를 제가 만들었나요?"하고 스스로 감탄했다는데 그 말은 '대부'의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이 해야 할 말이 아니겠는가. 물론 '벤허'도 아주 뛰어난 영화이긴 하다.
'대부'는 영화사에 깊이 아로새겨진 걸작으로 꼽힌다. 이 영화의 위대한 점은 아주 훌륭하고 장엄한 스타일을 창조하면서 마피아 영화의 틀을 뛰어넘는 인물들의 전형성을 제시했다는 것이다. 영화 도입부의 결혼식은 오페라의 장면들처럼 화려하고 눈부시며 마피아들은 악한이면서도 점잖은 측면을 지니고 있다. 영화는 마피아 세계의 질서와 균열, 이권 전쟁과 배신, 반대파들의 제거와 후계자의 부상 등으로 이어지면서도 가족애와 형제애, 남녀의 사랑 이야기도 함께 담아낸다. 인간 세상의 희로애락과 삶의 긴장과 위험 등 여러 요소를 한데 섞으면서 급하지 않고 느릿한 리듬으로 영화가 흘러가게 한다. 이러한 방식이 '대부'를 독창적이고 탁월한 스타일의 영화로 자리매김했다.
돈 콜레오네 역의 말론 브란도와 세째 아들 마이클 역의 알 파치노는 강렬하고 전형적인 캐릭터를 창조했다. 말론 브란도는 낮고 쉰 목소리와 느리고 위엄 있는 몸짓으로 '대부'에 어울리는 카리스마를 발산했다. 알 파치노는 순수한 청년에서 냉정하고 날카로운 면모의 마피아 후계자로 그럴듯하게 옮아가는 모습을 보였다. 이들의 캐릭터 연기가 워낙 압도적이어서 그 이전과 이후의 마피아 보스나 조직의 수장 연기를 하는 배우들은 그 벽을 넘기가 쉽지 않았다.
'대부'에는 또 전형적이면서도 많은 유형의 캐릭터들이 등장한다. 성격 급하고 다혈질인 장남 산티노(제임스 칸), 소심하고 유약한 차남 프레도(존 카제일), 충직하고 현명한 고문 변호사 톰 하겐(로버트 듀발), 사랑하는 남자가 가는 길이 불안하기만 한 케이 아담스(다이안 키튼), 성숙하지 못한 외동딸 코니(탈리아 샤이어) 등 다양한 인물들이 영화를 풍성하게 만들어냈다. 콜레오네 패밀리와 대적하게 되는 다른 마피아 패밀리 보스와 부패한 경찰서장 등은 상대적으로 평면적으로 그려지지만, 냉혹하거나 때묻은 일면을 충분히 나타낸다.
또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의 영리한 연출도 짚어봐야 한다. 영화에 평범하고 선량한 사람들은 아예 등장하지도 않고 마피아들도 선량한 사람들을 괴롭히지 않는 것으로 설정됐다. 그들은 신사협약으로 자기 영역을 지키다가 균열이 일어나자 서로 죽고죽이는 전쟁과 복수에 나서지만, 비열하지 않고 남자답게 충돌한다. 이 때문에 이 영화를 보는 선량한 관객들은 자신이 마피아와 관계 없는 현실에 가슴을 쓸어내리면서도 그들을 동경하는 부작용까지 빚어낸다.
이와 함께 영화의 도입부에 길게 이어지는 돈 콜레오네의 딸 코니의 결혼식에서 주요 등장 인물들이 대거 나와 그들이 누구인지, 어떤 관계인지를 알려준다. 3시간에 달하는 긴 상영 시간에 등장하는 수많은 인물들을 한꺼번에 펼쳐 보이는 뛰어난 방법이다. 마당에서 펼쳐지는 흥겹고 밝은 결혼식과 달리 저택의 어두운 방 안에서는 '대부' 콜레오네가 패밀리의 크고 작은 일들을 처리한다. 밝고 어두운 두 세계가 대비되면서 마피아 종사자들이 밝고 안락한 현실과 두려움과 죽음이 깃든 어둠의 세상을 오가는 처지임을 단적으로 나타내는 시퀀스들이다.
무엇보다 '대부'는 오랜 세월이 지난 후에도 강한 생명력으로 영화 팬들에게 잊히지 않는 추억을 선사한다. '대부'의 고전적이면서도 복합적인 전개와 풍부한 질감의 화면은 오늘날의 많은 세련된 영화들에 전혀 밀리지 않으며 오히려 능가하는 힘을 지니고 있다. 명장면의 퍼레이드도 떠오른다. 화려한 결혼식과 어두운 방 안의 돈 콜레오네, 크리스마스 쇼핑을 나갔다가 총격 당해 쓰러지는 돈 콜레오네, 병원에 입원 중인 아버지를 지키려고 마이클이 기지를 발휘하는 장면, 화난 채 차를 몰고 나갔다가 통행소에서 습격 당해 죽는 산티노(소니), 마이클이 외진 레스토랑에서 반대파들을 제거하는 장면, 마이클이 도피 중인 시칠리아에서 결혼하고 아내와 춤추는 장면(알 파치노의 아름다운 시절이다), 마이클이 반대파들을 제거하고 대부로 추인받는데 케이가 이를 바라보는 마지막 장면 등.
1973년에 개봉한 '대부'는 올해 국내 개봉 50주년을 맞는다. 이후에 '대부 2', '대부 3'이 만들어지고 '대부 2'의 작품성이 '대부'보다 낫다는 평가도 나왔지만, '대부'가 간직한 원형적 가치와 작품의 향기를 넘어설 수는 없는 것이다. 어릴 때 '대부'를 영화관에서 처음 봤을 때의 흥분도 기억난다. 언제인지는 기억나지 않으나 어릴 때였고 미국 영화가 이처럼 멋지고 재미있다는 데에서 경이로움을 느꼈던 것 같다. 이후 마피아 영화에 빠져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 '좋은 친구들'같은 영화들을 부지런히 보러 다녔다. 영화를 두 번 이상 잘 보지 않는 편이나 '대부'는 지금까지 N차 관람을 하고 있다. '최애 영화'라고 할 수 있는데 최근에도 넷플릭스에서 봤으며 볼 때마다 좋고 물리지 않는다.
반세기가 지난 시점이라서 영화에 출연한 많은 배우들이 이미 저 세상 사람이 되었다. 주연급 배우들 뿐만 아니라 조연, 단역 배우들도 오래 기억될 정도로 '대부'의 출연진들과 영화 팬들은 다른 영화에서는 맛볼 수 없는 추억을 갖게 됐다. 말론 브란도와 제임스 칸, 존 카제일, 영화의 원작 소설가이자 각본 작업에도 참여했던 마리오 푸조 등은 고인이 됐고 코폴라 감독, 알 파치노, 로버트 듀발, 다이안 키튼, 탈리아 샤이어, 코니의 남편으로 패밀리를 배신해 살해 당하는 카를로 리지 역의 지아니 루소는 인생의 황혼기를 맞고 있다.
조연과 단역들의 면면도 선명하게 떠오른다. 피트 클레멘자 역의 리차드 S. 카스텔라노, 버질 솔로조 역의 알 레티어리, 부패한 경찰서장 마크 맥클루스키 역의 스텔링 헤이든, 반대파 패밀리 보스인 에밀리오 바르지니 역의 리차드 콘트, 콜레오네 패밀리를 배신한 것이 발각돼 처단 당하는 살바도르 샐리 테시오 역의 아베 비고다, 인기 가수 쟈니 폰테인 역의 알 마르티노는 고인이 된 지 오래다. 그리고 시칠리아에 도피 중이던 마이클이 첫 눈에 반해 결혼까지 하게 되는 아폴로니아 비텔리 역의 시모네타 스테파넬리도 빼놓을 수 없다.
코폴라 감독은 원래 이 역에 올리비아 핫세(허시)를 염두에 두었다가 이탈리아 현지에서 시모네타 스테파넬리를 캐스팅했다고 한다. 스테파넬리는 무명의 배우였고 이후 출연작들도 그리 많지 않으나 '대부' 출연으로 오래도록 기억에 남게 됐다. 알 파치노와 시모네타 스테파넬리가 결혼식 후 피로연에서 춤추는 모습은 아름답고 행복한 장면의 백미이다. 스테파넬리는 올해 69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