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잠망경>할아버지·아버지 세대의 스타 지나 롤로브리지다(ft.'자기 앞의 생' 소피아 로렌, 그리고 클라우디아 카르디날레)
지금의 20대와 40대 초반까지의 세대를 'MZ 세대'라고 한다. 1980년대 초반에서 2000년대 초에 출생한 밀레니얼 세대와 1990년대 중반~2000년대 초반에 출생한 Z세대를 통칭한 용어이다. 디지털 환경에 익숙하고, 최신 트렌드를 좇고 남과 다른 이색적인 경험을 추구하는 것이 MZ세대의 특징이다. 이전에는 'X세대'가 있었고 '386 세대'는 486을 거쳐 '586세대'로 불린다. 반면에 우리나라의 1950년대생 이전 세대들에게는 특별한 세대 호칭이 없다. 출생자들이 많았던 1955년생~1963년생을 '베이비 붐 세대'라고 하고 그 중에서도 수가 많았던 '58년 개띠생'이라는 말이 있지만 수가 많다 뿐이지, 어떠한 특징을 가리키는 용어라고 할 수는 없다.
그 윗세대인 1930년대~1940년대생은 우리 사회의 최고령층에 속하는 아버지어머니, 할아버지할머니 세대이다. 최연장자 그룹인 이들은 전쟁을 겪었고 가난한 시대를 살아왔고 국가 경제발전의 기초를 마련했다. 고생과 희생은 많이 했고 과실은 적게 누린, 불행한 세대가 아닌가 한다. 후배 세대들은 마땅히 이들 선배 세대들의 희생에 감사함과 존경을 표해야 할 것이다. 미국에서는 세계 2차 대전에 참전한 군인들과 그들을 지원하며 함께 승리를 일궈낸 1910년대생~1920년대생을 '위대한 세대'라고 부르며 미국 정부는 '위대한 세대'의 청년들에게 교육과 취업 등을 적극적으로 지원했다.
미국은 당시에 떠오르는 강대국이어서 전쟁의 승리에 공헌한 세대들에게 보상을 할 수 있었지만, 우리나라는 가난했기 때문에 국민 개인을 돌볼 여력은 없었고 국가를 재건하는 데에 총력을 기울여야 했다. 그래서 1930년대생~1940년대생은 가난과 고통 속에서 공부하고 힘든 일을 하며 삶을 헤쳐나가야 했다. 변변한 직장이 없어서 번듯한 직업도 가질 수 없는 시대였기에 대부분 척박한 삶을 살아야 했다. 그러나 이들도 영화를 보고 음악을 들었다. 지금과는 많이 다른 문화이지만 '고난과 희생의 세대'들은 짬이 나면 시네마스코프 영화를 보고 명국환과 백설희, 프랭크 시나트라의 노래를 들으며 삶의 고달픔을 잊었다.
지난 16일 96세를 일기로 별세한 지나 롤로브리지다는 바로 '고난과 희생의 세대'의 스타 중 한 명이었다. 1927년생인 지나 롤로브리지다는 이탈리아 출신으로 1950년대와 60년대 영화에 출연해 전성기를 보냈으며 '20세기의 모나리자'라는 별명을 얻을 만큼 미모가 돋보였다. '로마의 여인'(1954년 개봉), '노틀담의 꼽추'(1957년 개봉), '솔로몬과 시바의 여왕'(1959년 개봉) 등이 대표작이다. 지금은 돌아가신 어머니가 젊은 시절에 '솔로몬과 시바의 여왕'에 대해 이야기한 기억도 난다. 이 작품들은 1970년대와 80년대 KBS의 '명화극장'같은 프로그램에서 방송했고 지금은 너무나 오래돼 역사 속의 영화가 되고 말았다.
지나 롤로브리지다는 자신보다 7~11살 어린 소피아 로렌(1934년생), 클라우디아 카르디날레(1938년생)와 함께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여배우였다. 소피아 로렌은 대표작 중 하나인 거장 비토리오 데시카 감독의 '해바라기'(1982년 개봉)에서 명배우 마르첼로 마스트로야니(1924~1996)와 호흡을 맞췄고 최근 들어서도 자신의 아들인 에두아르도 폰티 감독의 작품 '자기 앞의 생'(2020년 개봉)에 출연해 탁월한 연기를 선보였다. 소피아 로렌은 영화제작자 카를로 폰티(1912~2007)와 결혼했고 둘 사이의 아들이 에두아르도 폰티 감독으로 '자기 앞의 생'은 좋은 평가를 받았다.
클라우디아 카르디날레 역시 '부베의 여인'(1963년 개봉), 페데리코 펠리니 감독의 '8과2분의1'(1963년 개봉), '지상 최대의 서커스'(1964년 개봉), 세르지오 레오네 감독의 마카로니 웨스턴 걸작 '옛날 옛적 서부에서'(Once Upon A Time In The West·1970년 개봉) 등에서 인상적인 연기를 펼쳤고 최근까지도 연기 활동을 하고 있다.
지나 롤로브리지다는 1970년대에는 저널리스트로 활동해 주목을 받았다. 당찬 성격의 그녀는 당시에 쿠바 지도자 피델 카스트로와의 특종 인터뷰에 성공해 화제를 모았고 사진을 직접 찍는 등 적극적으로 일했다. 1996년에는 미스 이탈리아 심사위원장이 되어 도미니카공화국 출신의 흑인 이민자 데니 멘데스를 1위로 선정해 논란이 일기도 했다. 백인 이탈리아 후보자들도 있는데 굳이 흑인 이민자 출신 후보를 선정한 데 대한 반대의 목소리였다. 지나 롤로브리지다는 이에 대해 "백인이고 흑인이고 관계없이 제일 예쁘기에 선정한 것인데 웬 난리법석인지 모르겠다. 그렇게 불만이라면 앞으로 미스 백인 이탈리아를 따로 만들어서 백인만 고르면 될 것"이라고 일침을 놓기도 했다. 지난해 8월에는 이탈리아 정치가 엉망이라며 94세의 나이에 의회 선거에 출마해 그녀 다운 행보를 보이기도 했다.
사족-지나 롤로브리지다의 영화를 본 적은 없지만 어릴 적에도 이름은 알고 있었던 배우였으며 왠지 이름이 멋있다고 생각했다. 클라우디아 카르디날레와 소피아 로렌의 이름도 멋지다고 느꼈다. 지나 롤로브리지다의 이름을 떠올리면 발음의 연상작용인지 모르겠으나 지브로울터 해협이 떠오르기도 했다. 지나 롤로브리지다는 나이 들어서도 이따금 영화에 출연했는데 네이버 필모그래피 자료에 따르면 2012년에 개봉한 다큐멘터리 영화 '우디 앨런:우리가 몰랐던 이야기'가 마지막 출연 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