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의 인기화제작 '탑 건:매브릭'-톰 크루즈, 추억을 건져올리며 흥행을 끌어올리다
코로나19 바이러스 감염 우려로 한동안 영화관에 가지 않다가 6월 중순쯤인가에 4주 연속 영화를 보러 갔다. '탑 건:매브릭' '한산 리덕스' '헤어질 결심' '헌트' 등 네 편의 영화였는데 모두 괜찮았다. 그 중 최고는 '헤어질 결심'으로 영화를 보고 난 후 온갖 풍부한 느낌이 사로잡아 그 느낌들을 누군가와 한참 나누고 싶은 영화였다. 영화 한 편이 그토록 많은 느낌과 여운들을 자아내다니 무척 놀라웠다. '한산 리덕스'도 괜찮았고 '헌트'도 훌륭했다. 배우 이정재가 감독으로 처음 만든 '헌트'는 치밀한 구성과 액션이 숨가쁘게 이어져 그의 숨겨진 재능이 빛을 발하는 작품이 됐다.
'탑 건:매브릭'은 네 편의 영화들 중 영화적 재미로는 으뜸이었다. 이야기와 만듦새가 뛰어났고 무엇보다도 35년만에 나온 속편으로 올드 팬들에게 아련한 추억을 안긴 영화였다. 개인적으로는 1987년에 나온 '탑 건'보다 더 잘 만들었다고 느꼈다. 줄거리를 살펴보자. 전설적인 파일럿인 매버릭(톰 크루즈)은 자신이 졸업한 훈련학교 교관으로 부임한다. 그의 명성을 모르던 팀원들은 매버릭을 무시하다가 실전과 다름없는 상공 훈련에서 매버릭의 놀라운 조종 실력에 압도된다. 이를 계기로 매버릭은 팀원들을 장악하고 그의 지휘 아래 팀워크가 견고해진다. 그러던 중 팀원들에게 난공불락의 적 요새를 파괴하라는 위험한 임무가 주어지고 매버릭은 자신이 가르친 동료들과 함께 비장한 각오로 비행에 나선다.
35년전 '탑 건'의 줄거리도 되짚어보자. 해군 최신 전투기 F-14기를 모는 젊은 조종사 매버릭 대위(톰 크루즈)는 최정예 전투기 조종사를 양성하는 ‘탑건’ 훈련학교에 입학하게 된다. 저마다 실력을 뽐내는 그 곳에서 매버릭은 '아이스맨'(발 킬머)과 최고를 다투는 한편으로 생도들의 교육을 담당하는 항공물리학 전문가 '찰리'-샬럿 블랙우드(켈리 맥길리스)와 사랑에 빠진다. 그러나 비행 훈련 도중 매버릭이 몰던 전투기가 제트 기류에 휘말려 엔진 고장을 일으키고, 이때 파트너 구즈가 목숨을 잃게 된다. 매버릭은 자신을 잘 이해해주는 유일한 친구 구즈의 죽음에 충격을 받아 파일럿의 꿈도, 연인과의 사랑도 모두 포기하려 한다.
두 편의 영화는 연결돼 있지만, 영화 스토리는 독립적이다. '탑 건'을 보지 않았더라도 '탑 건:매브릭'을 보는데 별 문제가 없다. 그러나 '탑 건:매브릭'의 많은 관객들은 청춘 시절에 '탑 건'을 본 장년층 관객들로 이들은 후속작이 어떤 이야기를 담고 있을지 기대하며 극장을 찾았다. '탑 건'에 출연할 당시 톰 크루즈는 25세, 발 킬머는 28세, 켈리 맥길리스는 30세였다. 모두들 아름답고 빛나는 외모를 지닌 배우들이었다. 35년이 흘러 톰 크루즈는 환갑의 나이에 '탑 건:매브릭'에 출연해 여전히 주인공으로 영화를 이끌며 극 중에서 '탑 건'의 주요 인물로 장성이 된 '아이스맨' 발 킬머와 짧게 재회하는 장면이 나온다. 톰 크루즈는 나이에 비해 젊어보이는 얼굴이고 발 킬머의 얼굴은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담고 있었다.
장년층의 관객들은 자신이 젊었을 적 본 배우들이 자신들과 함께 나이들어가는 모습을 영화 속에서 보고 자신들의 청춘을 떠올렸을 것이다. 특히, 나이 든 톰 크루즈가 항공 점퍼를 입고 오토바이로 도로를 질주할 때 많은 장년층 남성 관객들이 눈물을 적셨다고 한다. 35년 전 '탑 건'에서도 젊은 톰 크루즈가 항공 점퍼를 입고 도로를 질주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 장면이 생각나 울컥하더라는 것이다. 영화 속 그 장면을 본 관객들이 한때 자신들도 빛나는 청춘을 보냈고 이제 그 시절이 오래전에 지나갔음을 느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톰 크루즈가 35년 만의 속편 영화에 나오는데 반해 전편의 상대역이었던 켈리 맥길리스는 나오지 않는다. 스토리의 초점이 달라진 것도 있지만, 남자 배우들과 달리 나이 든 여배우는 쉽게 배제되는 할리우드 제작 풍토 탓도 있을 것이다. 이 때문인지 속편 제작 논의 단계에서 켈리 맥길리스가 연기했던 '찰리'의 존재는 아예 거론되지 않았다고 한다. 이러한 상황에 대해 켈리 맥길리스는 "내 나이에 맞게 늙고 뚱뚱해서 그런 듯"이라고 자조적으로 입장을 밝히면서 자신 대신 제니퍼 코넬리가 후속작에 출연하는 것이 기쁘다며 그녀를 응원했다.
켈리 맥길리스는 '탑 건'으로 세계적인 인기를 얻었고 이전에 해리슨 포드와 함께 나온 1985년 작 '위트니스', 1988년 조디 포스터와 동반 출연한 '피고인', 1992년 존 굿맨과 함께 출연한 베이브 루스의 전기 영화 '베이브' 등에서 뛰어난 연기를 보였다. 그러나 켈리 맥길리스는 인기 상승세를 이어가지 못했고 1981년에 이어 2002년에 두 번째 이혼을 하는 등 사생활에서 고초를 겪었다. 그러던 중 2009년에 갑자기 레즈비언임을 선언, 여성과 결혼했고 마약과 알콜 중독에 빠져 급격하게 나이 들어 보이고 살이 찌기 시작했다. 결국, 2014년을 끝으로 배우 생활을 그만 둔 뒤 현재는 연기자 후배들을 양성하고 있다고 한다.
제니퍼 코넬리는 '탑 건:매브릭'에서 톰 크루즈와 사랑에 빠지는 여인 페니 벤저민 역으로 나온다. 페니는 35년 전 '탑 건'에서는 모습이 나오지 않은 채 언급만 됐던 인물로 속편에서는 '찰리' 대신 나오게 됐다. 1970년생인 제니퍼 코넬리는 1984년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에서 12세의 나이로 어린 데보라(엘리자베스 맥거번) 역을 맡아 주목 받았다. 장래가 촉망됐으나 20대에는 눈길을 끌지 못하는 작품들에 출연했고 30대에 접어들어 2001년 '뷰티플 마인드'에서 러셀 크로우의 부인 역으로 출연, 다시 조명 받았다. 이후 2003년 작 '헐크', 2006년 작 '블러드 다이아몬드', 2017년 작 '스파이던맨:홈커밍' 등 흥행작들에서 좋은 경력을 이어가고 있다. 제니퍼 코넬리는 나이 들어가면서도 외모와 몸매를 잘 관리한 탓인지 다른 여배우들이 나이 들어 배역에 제한을 받는 어려움을 비교적 덜 겪었다고 할 수 있다.
'탑 건'시리즈는 음악도 크게 흥행한 영화이다. 35년 전 '탑 건'에서 '사랑의 테마'인 그룹 베를린의 'Take My Breath Away'는 웅장한 인트로가 가슴을 때리고 케니 로긴스의 'Danger Zone'은 격정을 불러 일으킨다. 원리퍼블릭의 'I Ain't Worried'는 경쾌하고 자신만만한 젊음과 자긍심을 노래한다. '탑 건'시리즈가 세계적 흥행에 성공하는데 좋은 음악들도 한 몫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 '탑 건:매브릭'의 여러 장점 중 인상적인 것은 전투기 교전 상황을 아주 뛰어나게 표현한 것이다. 이전에 전투기의 교전 장면이 나오는 영화들이 여럿 있었는데 '탑 건:매브릭'만큼 상공에서의 교전 장면을 실감나고 긴박하게 표현한 영화는 별로 기억나지 않는다. 영화의 클라이맥스에서 나오는 전투기 교전 장면들을 매우 효과적으로 전달함으로써 이 영화는 화룡점정을 찍었다.
사족:'탑 건'시리즈의 많은 배우들을 이야기하다 멕 라이언을 빠트리고 말았다. 멕 라이언이 1987년 작 '탑 건'에서 비교적 중요하지 않은 배역인 톰 크루즈의 동료의 아내로 나왔기 때문일 수도 있다. 멕 라이언은 유명해지기 전에 출연한 이 영화에서도 그녀 특유의 밝고 경쾌한 매력을 유감없이 드러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