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타르 월드컵-'아틀라스의 사자들'을 돌아보라
카타르 월드컵이 숨가쁜 여정을 잠시 멈추고 숨을 고르고 있다. 의욕에 가득 찼던 32개 팀 중 이제 8강만 남았다. 한국, 일본, 호주 등 아시아축구연맹(AFC)의 3개국이 16강에 진출한 놀라운 성과도 잠시, 모두 강호의 벽에 막혀 귀국길에 올랐다. 한국 대표팀은 인천국제공항에서 팬들의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 16강 진출의 기쁨과 브라질에 막혀 더 나아가지 못한 아쉬움이 교차하지만 조규성, 이강인, 백승호 등이 4년 후 북중미 월드컵에서 더 성장, 한국의 도약을 이끌 것이라고 기대한다.
한국은 멈춰섰지만, 정상을 향한 카타르 월드컵의 더 가열찬 대결이 새로운 흥미를 불러 일으킨다. 강호들만 남아 더 수준 높은 경기가 이어지는데 12월10일 0시에는 브라질과 크로아티아가, 4시에는 네덜란드와 아르헨티나가 맞붙고 다음날인 11일 0시에는 모로코와 포르투갈이, 4시에는 프랑스와 영국이 준결승행을 다툰다. 4경기 중 2경기에서는 브라질과 포르투갈의 승산이 높고 나머지 2경기에서는 승리팀을 전망하기가 쉽지 않다.
브라질은 언제나 그렇듯이 우승후보다운 전력을 갖췄고 상대팀 크로아티아는 4년전 러시아 월드컵에서 준우승했을 때보다 공격의 활력과 날카로움이 무뎌졌다. 중원의 지휘자 루카 모드리치의 노쇠화가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슈퍼스타 리오넬 메시가 이끄는 아르헨티나는 메시의 존재가 강점이자 약점이다. 아르헨티나는 공격 전술을 메시에 맞출 정도로 메시 위주의 팀이며 메시는 사상 최고의 선수답게 집중 방어를 당하더라도 이를 가볍게 뛰어넘을 수 있다. 그러나 네덜란드는 세계 최고의 수비수 버질 반다이크가 이끄는 파이브백 수비 조직력이 굉장히 뛰어나다. 그래도 두 팀 간 대결에서 아르헨티나가 근소한 우위를 보일 것이며 '라스트 댄스'를 추는 메시가 4강전에 나서길 기원한다.
프랑스는 월드컵 2연패를 충분히 노려볼만큼 강력하다. 카림 벤제마, 은골로 캉테, 폴 포그바 등 핵심적인 스타들이 부상으로 빠졌지만 킬리안 음바페, 올리비에 지루가 이끄는 공격 화력은 크게 약화되지 않았다. 잉글랜드는 해리 케인과 주드 벨링엄, 부카요 사카 등 신·구 선수들이 공·수의 조화를 이루며 안정된 전력을 선보이고 있다. 프랑스가 약간 더 우세해 보이지만 큰 비중을 차지하는 음바페가 16강전 이후 부상설이 나돌고 있어 변수가 될 수도 있다. 56년 만의 우승에 도전하는 잉글랜드가 이기길 응원한다.
포르투갈-모로코 전에서는 포르투갈이 우세하겠지만, 마지막 남은 '돌풍의 팀' 모로코가 이겼으면 좋겠다. 한국처럼 월드컵 무대의 조연에 그치는 모로코가 멋진 경기로 '신스틸러'가 되었으면 좋겠다. 모로코는 8강 무대에서 더 나아갈 수 있는 경기력을 이미 과시했다. 모로코는 첼시FC에서 뛰는 미드필더 하킴 지예흐가 팀을 이끌고 파리 생제르망의 수비수 아치라프 하키미와 세비야의 골키퍼 야신 부누 등이 튼튼한 수비벽을 쌓아 인상적인 경기를 펼쳤다.
모로코는 F조 예선 3경기에서 FIFA랭킹 2위의 벨기에를 2대0, 캐나다를 2대1로 누르고 크로아티아와 0대0으로 비겨 2승1무, 조 1위로 16강에 올랐다. 16강전에서는 강호 스페인의 끊임없는 공격을 막아내며 0대0으로 비긴 뒤 승부차기에서 3대0으로 이겼다. 모로코는 16강전까지 4경기에서 4득점, 1실점의 기록에서 나타나듯 강인한 모습을 보였다. 공·수의 조직력이 뛰어나고 특히 수비의 끈끈함은 상대팀 선수들을 질리게 했다. 골키퍼 야신 부누의 미친 듯이 눈부신 선방도 모로코를 굳건하게 버티게 했다. 골 결정력을 높이는 공격의 세밀함이 보완된다면 상대가 누구이든 맞붙을수 있는 팀이다. 포르투갈이 공격력이 뜨겁지만 들쭉날쭉한 경우가 많아 모로코를 맞아 경기를 그르칠 가능성이 적지 않다.
북아프리카의 모로코는 슬픈 역사를 지니고 있다. 근세 이전에 바다를 사이에 두고 마주하는 이베리아반도의 포르투갈과 전쟁을 벌이며 시달렸고 20세기에는 스페인과 프랑스의 식민 지배를 받다가 독립했다. 이번 월드컵에서 스페인을 제압해 역사의 한을 조금이나마 풀었고 역시 역사적으로 얽혔던 포르투갈과 겨루게 됐다. 특히 모로코와 스페인의 16강전 승부차기에서 모로코의 골키퍼 야신 부누가 스페인의 3명의 키커의 얌전한 킥들을 모두 막아내고 모로코 네 번째 키커 아치라프 하키미가 가운데로 감각적인 파넨카 킥을 날려 승리를 확정짓는 장면은 축구의 약자가 강자를 농락하는 통쾌함을 안겨다 주었다.
모로코는 대개 유럽과 남미의 축구 강대국으로 추려지는 월드컵 8강에 아프리카 국가로 유일하게 들어갔다. 물러서지 않고 용감하게 싸운 끝에 이룬 성과다. 모로코가 8강에 오르는 과정은 매우 감동적이었고 그들의 놀라운 경기를 응원하게 됐다. 모로코가 아프리카 대륙 최초의 월드컵 4강 국가가 되길 빌어본다.
객관적인 전력 상 브라질-아르헨티나, 포르투갈-프랑스가 4강에 오르고 브라질과 프랑스가 결승전에서 만나서 프랑스가 우승할 것으로 예상한다. 1998년 프랑스 월드컵 결승전의 맞상대가 다시 만나 이번에도 프랑스가 승리, 월드컵 2연패를 달성할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응원하는 팀의 선전을 기원해 보자면 브라질-아르헨티나, 모로코-영국이 4강에 오른 뒤 아르헨티나와 영국이 결승전에서 만나 영국이 우승하길 바란다. 아르헨티나가 한국을 이긴 브라질을 반드시 이겨주면 좋겠고 결승전에서는 메시가 우승컵을 드는 것도 좋지만, 축구 종가 잉글랜드가 56년 만에 세계 정상에 오르는 것을 더 보고 싶다.
사족-모로코는 잘 알려지지 않은 왕정 국가로 오히려 모로코의 최대 도시 카사블랑카가 더 유명할 것이다. 할리우드 영화의 명작으로 손꼽히는 1942년작 영화 '카사블랑카'가 이 도시의 이름을 알렸고 1980년대에 활발히 활동했던 가수 버티 히긴스도 이 영화에 영감을 받아 '카사블랑카'라는 히트곡을 불렀다. 영화에서 험프리 보가트와 잉그리드 버그만의 사랑이, 또 버티 히긴스의 애절한 노래가 카사블랑카를 '낭만의 도시'로 알렸지만 '아틀라스의 사자들'이 월드컵 4강에 진군한다면 모로코 역시 더 많이 알려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