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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타르 월드컵-한국 축구, 브라질과도 멋지게 싸울 수 있다.

노우빅 2022. 12. 4. 12:03

 

한국 대표팀 선수들이 포르투갈과의 조별리그 최종전에서 2대1로 승리, 16강 진출을 기뻐하고 있다.

카타르 월드컵에서 대한민국이 포르투갈을 2대1로 누르고 16강에 진출한 것은 두고두고 남을 황홀한 순간이 아닐 수 없다. 2002년 한·일 월드컵때 사상 처음으로 16강에 진출하고 8강, 4강에 오르며 온 국민이 환희에 젖던 순간에 못지 않다. 기대하지 않았는데 놀라운 성취를 이뤄낸다면 기쁨이 배가되는데 이번이 그랬다. 2010년 남아공 월드컵에서 사상 첫 원정 16강에 오를 때에도 좋았지만 이번에는 미치지 못한다. 남아공 대회에서는 1승1패의 상황에서 해 볼만한 나이지리아와 경기를 했던 반면 이번에는 1무1패의 어려운 처지에서 포르투갈 이라는 거대한 적을 넘어섰기 때문이다.

사실 한국의 축구팬으로 사는 것은 쉽지 않다. 아시아권 대회에서는 상대가 누구든 자신만만하게 임할 수 있고 강하더라도 붙어볼 만하다고 느끼지만, 월드컵에서는 그렇지 않다. 만만하게 볼 상대는 하나도 없고 주눅들 수밖에 없는 상대를 만나 어떻게든 버텨서 비기거나 이겨보자는 마음만 들 뿐이다. 잉글랜드 프로축구에서 프리미어리그 승격을 위해 애써 올라왔다가 버티지 못하고 1~2시즌 만에 강등하게 되는 노리치시티, 블랙번 같은 팀들의 팬들도 아마 그럴 것이다.

 

한국 대표팀의 주장 손흥민이 포르투갈과의 조별 리그 최종전에서 2대1로 승리, 16강에 진출한 것을 기뻐하며 관중석에 박수를 보내고 있다.

그렇다고 축구가 강한 나라나 클럽팀들의 팬들이 마냥 행복한 것은 아니다. 그들은 한국의 축구팬들과 달리 대부분 자신만만하고 언제나 승리를 즐길 준비를 하지만 그들의 팀들이 언제나 이길 수는 없는 것이다. 그래서 간혹 예기치 못한 패배를 당하면 그 충격은 어마어마해 커다란 후유증에 시달리게 된다. 독일 축구팬들이 2018년에 독일이 한국에 일격을 당해 조별리그에서 탈락해 충격을 받았고 이번에 절치부심하고 나섰음에도 다시 탈락해 큰 슬픔에 빠진 것이 단적인 예다. 월드컵 무대의 강호로 대접받다가 16강에 오르지 못한 멕시코, 덴마크, 벨기에, 우루과이의 축구팬들도 충격이 적지 않을 것이다. 4회 우승의 경력인데도 국가대표팀이 아예 월드컵에 출전하지 못한 이탈리아인들의 심정은 두 말할 것도 없을 것이다. 약간 다른 이야기지만 박지성과 웨인 루니 등이 뛰던 시절의 행복했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팬들도 지금은 4위 안에 들기 위해 안간힘을 다하는 현실에 전에 없던 스트레스를 느끼고 과거를 그리워하며 지내는 신세를 한탄하지 않을까 싶다.

이번 카타르 월드컵은 한국 축구팬들에게 자주 찾아오지 않는 행복한 월드컵이다. 독일과 스페인을 이기고 16강에 진출한 일본 축구팬들의 환희는 더할 것이다. 우리나라와 일본의 축구팬들은 16강 진출로 온 나라가 뒤집어지며 하나가 되는 일체감을 맛보았다. 이제 우리는 16일 새벽 4시에 벌어지는 브라질과의 16강전을 행복하게 기다릴 수 있다. 세계 최강인 브라질을 만난 것이 불행일 수도 있겠지만, 이기지 못하더라도 좋은 경기를 펼친다면 한국대표팀에게 뜨거운 박수를 보낼 것이다. 혹시 골을 넣고 승리의 신이 도와 이긴다면 그 승리의 황홀감을 마음껏 누릴 준비도 돼 있다.

 

카타르 월드컵에서 브라질과 아르헨티나의 결승전이 펼쳐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16강전에서 만나는 한국은 브라질에게 가볍게 치울 수 있는 중도의 장애물일지 모른다.

브라질은 언제나 '세계 최강의 팀'이다. 이번 카타르 월드컵에서 지난 대회 우승팀으로 2연패를 노리는 프랑스가 강력한 플레이를 펼치며 브라질보다 전력상 앞선다는 평가를 받지만, 그래도 '세계 최강의 팀'은 브라질이다. 전력을 보고 세계 최강을 따지는 것이 아니라 '세계 최강'은 그냥 브라질이며 이 표현은 브라질에만 쓰게 되는, 일종의 고유명사 같은 것이 돼 버렸다. 브라질은 항상 월드컵에 출전하고 항상 조별리그를 통과한다. 5차례 우승으로 최다 우승국이고 준우승도 2차례 했다. 무엇보다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유연하고 아름다우며 강한 플레이를 펼친다. 그리고 언제나 세계 최고 수준의 선수들로 대표팀을 꾸리고 당대의 슈퍼스타를 낳으며 오로지 우승 만을 향한다.

그러한 브라질이기에 드물게 발생하는 충격적 패배에 나라 전체가 거대한 슬픔의 스트레스에 휩싸이기도 한다. 1950년 자국에서 열린 월드컵대회 때 브라질은 승리를 당연시했지만 결승전에서 우루과이에게 2대1로 패해 팬들이 자살하고 숨지는 등 비극적인 후유증을 겪었다. 2014년 역시 자국에서 월드컵대회를 열었고 여섯 번째 우승을 노렸지만 준결승전에서 독일에 1대7로 크게 졌다. 이는 브라질이 결코 받아들일 수 없고 겪어보지 못한 참패였기에 1950년 '마라카낭의 비극'에 뒤이은 '미네이랑의 비극'으로 불리게 됐다.

 

카타르 월드컵에서 부상으로 대회 도중 팀을 떠나게 되 브라질의 가브리에우 제주스

16강전에 나서는 브라질의 상황이 좋지만은 않다. 스트라이커 가브리에우 제주스와 수비수 알렉스 텔리스가 부상으로 결장하고 부상으로 앞선 2경기에서 결장했던 슈퍼스타 네이마르도 제 컨디션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그 외 주전급 선수들도 크고 작은 부상에 시달리고 있다. 상대가 한국인 점은 안도감을 주지만, 긴장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한국은 조직적으로 잘 조직팀이고 손흥민, 이강인 등 번뜩이는 재능의 선수들이 있다. 브라질의 치치 감독은 5개월 전 평가전에서 5대1로 눌렀던 한국과는 다른 팀이라며 경계심을 보였다. 이번 월드컵이 강호들이 덜미를 잡히는 이변이 많은 현상도 신경쓰지 않을 수 없다. 

한국도 선수들이 부상을 안고 있어 최상의 전력은 아니다. 마스크를 쓰고 플레이해야 하는 주장 손흥민은 제 기량을 충분히 발휘하기가 어렵다. 그래도 포르투갈 전에서 결정적인 킬 패스를 구사해 황희찬이 결승골을 넣게 함으로써 에이스의 면모를 보였다. 수비의 핵 김민재가 경기에 나설 수 있을지, 나서더라도 제 컨디션으로 임할 수 있을지도 불투명하다. 그래도 한국은 파울루 벤투 감독이 공을 들여 단단한 팀으로 발전했다. 공격과 수비가 짜임새 있고 쉽게 허물어지지 않는 팀으로 탈바꿈했다. 브라질과 좋은 경기를 치를 수 있고 승패를 겨룰 수 있다는 기대감을 갖게 한다.

특히, 한국은 간간이 '강팀 파괴자'였다. 1994년 미국 월드컵에서 독일에 2대3으로 졌지만 그들을 혼쭐냈고 강호 스페인에 2대2로 비기는 저력을 보였다. 1998년 프랑스 월드컵에서 벨기에와 1대1로 비겼고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는 포르투갈, 이탈리아, 스페인 등 강호들을 차례로 격파했다. 당시에 이탈리아와 스페인 팬들은 패배를 심리적으로 받아들이지 못해 심판 판정을 거론하곤 했다. 2006년 독일 월드컵에서 프랑스와 1대1로 비겼고 2018년 러시아 월드컵에서는 전 대회 우승팀 독일을 2대0으로 격침하는 파란을 일으켰다.

한국은 4강까지 올랐던 2002년 월드컵 결승전에서 브라질과 만날 수도 있었다. 한국 축구로서는 4강까지 오르는 것도 비현실적인 성취로 느껴졌고 결승에는 오르지 못했다. 두 팀은 월드컵 무대에서 한 번도 만나지 못했고 이번에 처음으로 승부를 겨루게 됐다. 브라질은 2002년 월드컵에서 우승한 지 20년 만에 여섯 번째 우승을 노리고 있고 한국은 8강에 오르기 위한 길목이다. 브라질 쪽으로 많이 기우는 승부이지만 한국의 태극 전사들은 물러서지 않겠다는 각오를 다지고 있다. 한국은 이미 우루과이, 포르투갈 등 브라질과 비슷한 색채를 띠는 강호들과도 불퇴전의 경기를 펼쳤고 그 결과 비기거나 이겼다. 브라질과의 경기에서도 같은 자세이다. 맞부딪히고 물러서다가도 나아갈 것이다. 용기 있고 결연하게 임하되 버티고 예민하게 반응하고 거침없이 슛을 쏴 기억할 만한 승부를 펼치질 기원한다.